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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면서도 모두 이처럼 민간의 의탁해서 살아간다. 한마디로 관리들이
‘민간을 뜯어먹고’
살아가
는 세태가 엿보인다.
가을철 달 밝은 밤이면 뭇관리가 관청일을 마친 후에 뿔뿔이 흩어져서 각 동네 민가에 찾아다니
며 큰소리와 작은 소리로 찾고 부르며 마구 들어오니 비록 닭은 울지 않으나 개 짖는 소리는 밤이
새도록 끊기지 않는다. 호산록의 저자가 다소 과장되게 묘사 했을성 싶으나 착취의 도가 넘었음을
알수 있다. 가난한 어촌의 민중들로서는 마지못하여 곡식 됫박을 허락해주지만 적다고 성내어 받
지 않고 반드시 몇 말을 퍼준 후에야 받아간다.
이와 같이 관청 세력을 의탁하여 앞에 왔던 자가 가고나면 뒤에 오는 자가 있고, 다시 앞에 온
자가 가고나면 다시금 뒤에 오는 자가 있다. 오늘만 이러한 것이 아니라 내일도 이와 같이 하며 또
내일에도 이같이 하니 곡식은 한정이 있는데 달라는 자는 끊이지 않으니 민간이 곤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중에도 대산과 지곡 주민들의 침해를 당하는 정도가 다른 마을에 비하여 유독 심하였
다. 이는 사냥하는 일로 관리가 자주 들어오고 품관까지도 오고가는 것이 끊이질 아니하여 관리들
의 조석제공과 마태(
)?마죽 제공, 게다가 어물과 소금을 거두어 가며, 개인 사냥까지 덮치어
한계를 찾을 수 없다 하였다. 국영목장터였던 대산반도 쪽의 사정이 가장 심각했음을 호산록을 적
시해준다.
2) 일제강점기 :
『한국수산지』
의 경우
『한국수산지』3권
65)
충청남도편에 해미군, 서산군, 태안군편이 있다. 각각의 편에 서술된 현재
의 서산관할지역 관련 내용을 직번역과 약간의 설명을 보태어 서술해보기로 한다. 먼저 해미군 조
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등장한다.
66)
본조(
; 조선왕조) 태종 7년, 정해(
)와 여미(
) 두 현( )을 합쳐 하나의 현으로 만들고
해미(
)라고 칭한다. 태종 13년, 현감( 監)을 설치한다. 건양(建 ) 원년에 군(郡)이 되어서 오
늘에까지 이른다. 정해현은 고려(高 ) 고구현(高丘 )의 일부이고 여미현(
)은 본래 백제(
)의 여촌현(
), 신라(
)의 여읍현(
)이다. 동쪽은 당진?오천?덕산?홍주의 네 군
과 접하고, 남쪽은 결성군에 접하며, 서쪽의 대부분은 서산군과 경계를 이루는데 일부는 바다에
속한다. 북쪽도 역시 바다에 임한다.동쪽의 홍주?덕산 양군에 속하는 가야산(伽
)의 지맥은
본 해미군을 관통해서 서쪽으로 뻗어 나아가 팔봉산(
)으로 솟아오른다. 그리고 그 지맥은
군내를 기복(起 )하지만 예로부터 지세가 평탄하고 하천은 그다지 큰 것이 없고 대체로 한두 개
65)
農 工
『 國
3卷,
局, 1910.
66)
『 國
3卷, 762-766쪽.
6 |
2011_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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