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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시 인지면 차리의 경우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1996년경만 하더라도 마을에서 볏가릿대를
4곳에 세웠다고 한다. 차리는 행정상 4개 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을 사람들이 풍물을 치고 돌아다
니면서 각 반에서 가장 잘 사는 집 마당에다 볏가릿대를 세워 주었다고 한다.
볏가릿대 세우기가 끝나면 풍물패는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지신밟기를 하고, 이어 그 집에서는
답례로 술과 음식을 마을 사람들에게 대접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개인보다는 공동체가 우선이라는
공동체 의식과 어렵게 살던 시절 서로 도우며 나눌 줄 알았던 우리 조상들의 미덕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당진군 구룡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즉 옛날 구룡리에서는 볏가릿대를 마을사람 공동
으로 자연 마을마다 하나씩 세우는 것 이외에 부잣집에도 세워 주었다고 한다. 그러면 부잣집에서는
술과 음식을 마을 사람들에게 푸짐하게 내놓았다. 한편 부잣집 마당에 세워 두었던 볏가릿대의 경우
역시 음력 2월 1일날 넘어뜨리는데, 이 때 볏가릿대에 감았던 볏짚은 풍년이 든다고 하여 볏섬에 담아서
그 집 창고에 보관하였다가 거름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풍습은 6.25 전쟁 이후 중단되었다.
그러다가 1991년 농촌지도소에서 파견 나온‘주재 지도사’
가 이를 발굴하여 재현함으로써 현재는 3년
마다 한번씩 윤달이 드는 해에 마을회관에 1개만을 세움으로써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서산시 대산면 운산 5리의 경우에도 마을 회관 앞에 위치하고 있는 들판(논)에 볏가릿대를 세운다.
이 마을의 경우 볏가릿대를 세우고 볏가릿대 고사를 지낼 때 바로 위쪽에 있는 공동 샘에서 샘제를
지내고 있다. 볏가릿대 세우는 것 이상으로 샘제를 중요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로 보아 서산
지역을 중심으로 한 내포지역의 볏가릿대 신앙은 우물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볏가릿대의 형태
볏가릿대의 생김새도 지역에 따라 다소 다르다. 대개 인지면 차리의 경우와 같이 기본적으로 살아
있는 소나무나 대나무를 베어 장대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13)
지곡면 장현 2리 경우처럼 묵은
대나무나 소나무를 해마다 사용하는 마을도 있으며
, 충남 당진 구룡리의 경우에는 대나무와 소나무를
동시에 사용하기도 한다. 한편 전라도 진도지역의 볏가릿대 모습은 긴 장대 위에 볏짚단의 밑 부분을
묶고 그 안에 벼·조·피·기장 등의 온갖 곡식을 이삭 채 싸서 매달고, 그 밑에는 목화송이나 새끼줄
등을 늘어뜨려 놓는다. 그러나 충남 서산·당진 지역의 경우에는 소나무나 대나무를 베어다가 맨 꼭대
기에 오곡(五穀)을 헝겊에 싸서 매달고 짚으로 주저리를 틀듯이 장대를 감싼 다음, 벼이삭이 늘어진
모양으로 동아줄 3개를 거꾸로 틀어 줄을 매어 세운다.
실제 사례를 통해 유형별로 그 생김새를 살펴보면 당진 구룡리의 경우 볏가릿대를 세우려면 우선 약
6m 정도 되는 긴 소나무 한 그루와 왕대나무 한 그루를 윗가지를 자르지 않은 채 베어 온다. 대나무는
휘어지지 않고 곧게 뻗어 올라가므로 마을의 운수가 대나무와 같이 곧게 뻗어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용하고, 소나무 역시 솔잎처럼 푸름과 곧은 절개를 닮으라는 의미에서 사용한다고 한다. 이어 마당
중앙에 두 개의 나무를 포개어 세운 다음 그 대를 짚으로 주저리처럼 감싸는데, 이를
‘옷 입힌다’
한다. 볏가리를 쌓는 의미가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나무가 드러나면 보기에 흉하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대가 쓰러지지 않도록 짚으로 3개의 동아줄을 꼬아 위로부터 바닥에 고정시킨다. 대 꼭대기에는
2011_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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