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52페이지

8페이지 본문시작

[1] 진주강씨 강자위
강자해
형제
| 姜自渭
| 姜自海
<? ~ ?>
<? ~ ?>
조선 전기의 문신이며 진주강씨(晉州姜氏) 은열공파 10세(世)로 동생 자해(自海)와 함께 아산시 송
악면 동화리 지역 입향조(入鄕祖)이다. 이들 형제는 아산시 일원에 퍼져 있는 진주강씨 집안 대부분
의 조상이기도 하다. 현재 동화리에 거주하는 28세(世) 강구서(姜龜瑞, 64세)씨의 18대조이다.
보문각 직학사(정4품)를 지내서 직학사공파 파조가 된 강원찬(姜元鑽)의 현손이고 공조전서에 오른
강윤지(姜允祉)의 증손이며 임피현령 강수(姜壽)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효행으로 봉정대부 평창도사
를 지낸 강일우(姜壹遇, 一遇)이고 어머니는 함양박씨로 군수 박금(朴錦)의 딸이다.
강자위는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음서로 관직에 나가 통훈대부 북청 판관을 지냈고 1471년(성
종2)에 좌리공신(佐理功臣)에 책록되었다. 후손들이 북청공(北靑公)으로 호칭한다.
그가 언제 어떤 사유로 송악에 들어왔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중에는 그의 아
버지 강일우와 관련하여‘남원부에 사는 강일우’
가 어머니 상에 3년간 시묘하여 포상한다는 기록이
있고 다른 기록에‘거향(居鄕) 온양’
이라 했으니 강일우가 나중에는 온양에 살았다고 볼 수 있다. 또
한 강일우의 증조인 강원조의 동생 강원전(姜元鐫,
“호부사공”
)과 관련하여‘온양에서 군산으로 이주
했다’
는 기록이 있어서 그보다 훨씬 먼저인 고려 후기일 수도 있다. 현재 후손들은 강자위를 입향조
로 알고 있으므로 일단 강자위를 기준으로 정리하되 좀 더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현재로서는 강자위
를 기준으로 하여 약550년 전으로 본다.
강자위의 부인은 원주김씨(原州金氏) 직장(直長) 김연종(金連宗)의 딸이다. 문한(文翰), 문필(文弼),
문익(文翼) 등 세 아들을 두었다. 강문한(姜文翰, 1464∼1547)은 가선대부(종2품) 행동지중추부사에
까지 올랐고 회덕(대전 대덕 석봉동)에 살다 졸했기 때문에 그의 후손들이 회덕에 터를 잡게 되었으
며 그 중 일부는 뒤에 다시 온양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강문한의 현손 강백년은 온양에 와서 살았고
증손 강주와 현손 강학년은 묘를 온양 지역에 썼다.
강자위의 둘째아들 강문필은 통훈대부로 북청판관을 지냈고 셋째 강문익은 사직을 지냈으며 이들
은 각각 배방 신흥리와 중리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서 후손들이 다시 인주 도흥리, 대음리, 신
창 가내리 등으로 확대되고 멀리는 공주, 홍성, 태안 등지로 확산되었다.
한편 함께 송악에 들어온 동생 강자해(姜自海, ?~?)는 사맹을 거쳐 상의원 주부를 지냈고 후손들이
‘사맹공’
으로 칭한다. 부인인 순창조씨(淳昌趙氏) 생원 조당(趙
)의 딸 사이에 외아들 영효(英孝)를
두었다. 당진현감을 지낸 강영효가 희려(希呂), 희윤(希尹), 희증(希曾) 등 3남1녀를 두며 후손이 늘
8
아산입향조 |

8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