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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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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퇴 당시 온천동소재 탕정관 현재 양진빌딩 건물에 국립요양소가 이전해 와서
의료활동을 하였으며 한편 치과의원의 시초를 살펴보면 온천동소재 온양인쇄소 근처에 일본
인 좌백문대부가
1926
년경 개설한 좌백치술원 이 그 시초가 되겠다
양약방 한약방
우리고장에 의약업종이 언제부터 개설되었는지에 대한 구체적 자료는 의료업과 같이 상고할
길이 없다 의료사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고장에 의약업종이 같은 연대에 시작되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되며 주로 한약종상이 약사와 의료에 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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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라 보아진다.
그런데 조사내용에서 밝혀진 바로는
1915
년대에 온천동 소재 현재의 용문탕 자리에서 심언
) ‘
수성당한약방 을 개설하여 주민들의 질병치료와 매약행위를 하였던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
보다 조금 뒤늦은 시기에 역시 온천동에서 최순 이 한약방을 개설하였으며 온천동에서 임성재
가 임성재한약방 을 차리고 치료와 매약행위를 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우리고장에 양약
방을 제일 먼저 개설한 것은 일본인으로서
1925
년에 온천동 현재의 온양인쇄소 옆자리에 경
남약포 를 차리고 의약용품 자양식품 공업약품 화장품류를 매매하게 됨으로서 현대 의약업의
첫걸음을 내 디디게 된 시초라고 할 수 있겠다.
의류관계
1)
양복점의 뿌리
오늘날 우리의 의복 문화는 거의 모두가 양복에 의존하고 있지만
1920
년대만 해도 백의민
족의 민족혼을 항상 간직해온 당시 사람들로서는 양복 문화에 그리 쉽게 동화 되지를 아니 하
였다 그러나
1920
년대에도 유행의 첨단을 따르기를 좋아하고 멋에 도취된 일부 개화파들은
양복을 입고 멋을 내기도 하였다 우리고장의 양복점이 제일 먼저 생긴 뿌리를 더듬어 보니
1930
년경 현 온천동 성심약국 자리에서 경남 양복점이란 이름으로 이기철이 시작한 것이 그
시초가 되겠다.
2)
포목점의 뿌리
우리고장에서 포목점을 제일 먼저 개업한 뿌리를 살펴 보았더니
1924
년경 현 신천탕 자리
에서 조봉환이란 사람에 의하여 개업된 것이 그 시초가 되겠는데 동년대에 그 이웃에서 이한
규에 의하여 대성상회라는 상호로 포목점을 경영하였다는 자료도 나왔다.
3)
세탁소의 시초
온양지방에서 세탁을 주업으로 하는 세탁소가 생긴 것은
1930
년경 전 프린스여관 옆자리에
서 이름이 파악되지 않은 일본인이 빨래감을 맡아서 빨아 다려주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세탁
소가 문을 연 것이 우리 고장에서의 세탁소 시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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