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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혼은 외암 이간 선생과 함께 학자로서 윤혼이 처음 관선제를 세우고 후학을 가르쳤으
며 순조때 외암서원으로 하고 이간과 윤혼을 배양하였다가 고종
5
(1868 )
년 에 헐리고
현재 강당사로 됨.
윤혼 (
: 1676 1725)
자는 회보요 호는 천서이며 본관은 파령이나니 참판을 지낸 매음근의 현손이다 수암의
문이능로 경종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지평벼슬을 했다 학문이 크고 깊어 낙론을 주장했고
강문 팔학사 가운데서 한 사람이 되었다.
심서웅
이조
본관은 청송
안효공 온의 후예
이다 온양군 남상면 현 아산군 송악면 지역
석우리
에서 살았는데 효동
이라는 칭찬
을 들었다 부친이 병들어 꿩고
기와 물고기를 먹고 싶어 하므로 걱정하는 중인데 갑자기 꿩이 방안으로 날아 들어왔고
다리 위로 뛰어오르는 이상한 일이 나타났다 일향
의 사람들이 승의
에게
수차 이 사실을 말하여 민계기년
癸己年
에 급복
되었다
. <
>
10)
종교단체
절골이란 마을에 기독교 단체인 기도원이 있는데 이 안에 강당 교회가 하나 있고 신도수
8
10 ,
명 강당사는
신도수가
50
명이 된다
벌뜸 마을에는 종교단체는 없으며 대부분 마을에 인접한 송악 감리교회와 순복음 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11)
공장현황
마을에는 공장은 없으며 계곡이 유원지로 지정되면서 상가들이 많이 늘어나게 되었다
12)
마을의 특성
강당골 마을에 차령산맥의 지류인 광덕산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강당골은 수목이 울창하
고 옥류와 맑은 공기 그리고 기암괴석
으로 되어 봄 여름 가을에 소풍
는 사람이 많으며 특히 여름철에는 피서
를 위해 많은 사람이 붐비고 있다 이로 인
해 깨끗한 계곡은 많은 훼손을 가져오고 있으며 조용하고 살기 좋던 곳이 손님들을 끌기
위한 음식점들이 계곡에 즐비하게 늘어서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물론 관광지화 시키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주민들이 앞장서 깨끗한 환경속에서 손님을 맞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
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벌뜸 마을은 그리 크지 않고 옹기종기 움집하여 있으며 외암민속마을과는 불과
500m
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마을 사람들은 생각했던바와는 달리 서로간의
정이 풍부했고 애경사시 자기일처럼 돕는 넉넉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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