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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정작 와서는 약탈만 일삼아 모두 도망칠 것만 생각하니, 난들 어찌 혼자 남아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진공(陳公)이 손을 잡고 말리므로 공이 다시,
「귀국 군사들이 나를 속국 신하라 하여 조금도 꺼림이 없으니 만일 임시방편으로
제어할 권한을 준다면 해결할 도리가 있을 것이오.」
하였다. 진(陳)공이 또한 허락하니 그때부터 온 섬 안이 무사해졌다.
부하 송여종(宋汝悰)이 명(明)나라 수군과 함께 적을 쳐서 칠십 명의 목을 베었지
만 명군은 하나도 얻은 것이 없었다. 진공이 부끄러워하며 성을 내자 공이,
「장군이 와서 우리 군사를 통제하시는데 우리 군사의 승첩이 곧 귀국 군사의 승첩
인데 어찌 감히 내가 차지하리까. 얻은 것을 모두 바치오리다.」
하니 진공이 몹시 기뻐하여,
「일찍이 공의 명성을 들어 왔는바 이제 보니 과연 그러 하오이다.」
하였다.
이 일로 송여종(宋汝悰)은 실망하여 스스로 하소연하므로 공이 웃으며,
「썩은 머리를 아껴서 무엇 하랴. 그대의 공은 내가 다 보고로 아뢰겠소.」
하니 여종(汝種)도 또한 복종하였다.
진(陳)이 공의 군사를 다스리고 군략을 세우는 것을 보고 탄복해 말하기를,
「공은 실로 작은 나라 인물이 아니다. 만일 중국으로 들어가면 반드시 천하의 대장
이 되리라.」
하였다.
선조대왕께 글을 올리기를,
「이통제는 천지를 주무르는 재주와 나라를 바로 잡은 공이 있습니다.」
라고 하였으니 이는 진심으로 탄복했던 때문이었다. 드디어 명(明)나라 황제에게까
지 아뢰니 황제 또한 가상히 생각하여 공에게 도독의 도장을 선물하니 지금까지 통
제영에서 간직하고 있다.
9월에 명나라 제독(提督) 유정(劉綎)이 중국 사천(四川) 운남(雲南) 등지의 군사 일
만 오천 명을 거느리고 예교(曳橋) 북쪽에 진을 쳤다. 10월에 수군과 함께 적을 협
공하기로 약속하였다. 공이 도독과 함께 나가 싸우던 중에 첨사(僉使) 황세득(黃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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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의 神道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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