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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선의 역세권에 있는 학생들은 통학이 용이하기 때문에 남서울대 학생들의 왕래가 많
다.
성환목장(국립 종축장, 축산기술연구소)은 드넓은 땅을 차지하고 100년이 넘게 유지
돼 왔다. ‘성환’ 하면 성환목장이 떠오른다는 사람도 있지만, 지역의 발전을 가로막아온
곳이기도 했다. 이제 이전이 확정되어 반갑고, 그 부지를 이용한 개발계획이 희망적으로
잘 수립되고 있어 기대가 크다. 예전에는 유명한 소풍 장소로 활용되었기에, 열차에서
내린많은학생들이줄지어걸어가던모습은잊을수없는풍경이다.
심재호는 대학을 졸업하고 가업을 잇기 위해 과수원 경영을 함께 했다. 무엇보다 소독
을 자주 하는 것이 힘든 일이었다. 지금은 성능이 매우 좋은 자동분무기가 이용되고 있
지만, 당시는 원시적인 수동분무기였다. 몇 단계의 진화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자동분무
기가 이용되기에 이르렀다. 과수원은 기술을 필요로 하고, 주의를 게을리하여 자칫 실
패할 경우 타격이 크기도 했다. 일기에도 촉각을 세워야 하고, 화접이나 봉지 씌우기 등
의작업을위해서는일손부족의문제도심각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보통 사람의 생각대로 편한 직업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
는 한눈팔지 않고 성실하게 과수원을 경영하여 농협 조합장을 맡기까지 16년을 이어왔
다. 성환의 특산품인 배 농사와 사과 농사를 함께 지었다. 인근 경기도 동남부 지역에서
많이재배하고있는복숭아는저장성이떨어져서시도하지않았다.
농협 조합장이 된 것은 완전히 타의에 의한 것이었다. 그가 합리적이어서 농협의 운영
을 정상화시킬 적임자로 중의가 모아지며 여러 사람이 찾아와 설득하였다. 계속 피해 다
니다 지쳤고 여러 사람의 권유 때문에 결국 수락했다. 다행히 그가 조합장을 맡으면서
농협의운영은정상화되었다.큰어려움없이농협운영이정상궤도로들어섰다.
천안이 시로 승격되기 전에는 천안군이었다. 천안읍과 환성면(현재 천안서남부 일대)
이 천안시와 천원군으로 된 것이다. 군세가 약해져서 박탈감을 느끼던 중 이름마저 빼앗
겼으니 시군 사이에는 알게 모르게 알력이 작용하고 있었다. 따라서 시군 통합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초기에는 천안군(뒤에 본 이름 찾기 운동의 일환으로 천원군은 천안군으
천안서북구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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