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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홍온
<1521(중종 16년) ~ 1579(선조 12년)>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이다. 본관은 남양(南陽)으로 남양 홍
씨 아산 대동리 토홍(土洪)의 입향조(入鄕祖)이다. 이조참의 한
(瀚)의 손자이고 판관을 지낸 증이조판서 윤창(胤昌)의 아들이
며 어머니는 안성(安城) 이(李)씨로 현령 정숙(正叔)의 딸이다.
부인은 흥양(興陽) 신(申)씨로 군수 윤필(允弼)의 딸이다. 그의
초명은 황(晃)이고 자는 경휘(景輝)이며 명신 만전당(晩全堂)
가신(可臣)의 아버지다. 1549년(명종 4) 식년 진사시에 급제하
고 관직은 장원서(掌苑署) 장원(掌苑-정6품)에 이르렀다. 그는
경기도 남양(南陽)에 거주하다가 처가(妻家)가 있는 아산 염치
<홍온의 묘비와 묘갈>
대동으로 내려와서 자리 잡고 살게 되었으며 처가의 가산을 물
려받았다. 그가 아산에 자리 잡은 이후 후손들이 크게 번창하였다. 후손이 끊어진 흥양 신씨의 묘에 남양
홍씨 문중에서 외손봉사(外孫奉祀)로 지금까지도 제사를 모시고 있다. 그는 아들 가신(可臣)으로 인해 영
의정(領議政)에 추증되고 익녕부원군(益寧府院君)에 봉해졌다. 묘는 경기도 과천(果川)에 있었으나 서울
시 확장으로 인해 1967년에 그가 살던 염치읍 대동리로 옮겨 모셨다. 1763년(영조 39)에 7세손 병사(兵
使) 약수(若水)가 세운 묘표가 있다. 부인 신씨의 묘도 그의 묘 아래에 있다.
[129] 홍우기
洪宇紀
<1607(선조 40년) ~ 1690(숙종 16년)>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명신 만전(晩全) 가신(可臣)의 손자이고 부사과 비( )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덕수(德水) 이(李)씨로 충무공 순신(舜臣)의 딸이다. 부인은 열녀 정려가 내려진 여흥
민(閔)씨 흥근(興根)의 딸과 청주 양(楊)씨 시발(時發)의 딸이다. 자는 사선(士善)이고, 음보(蔭補)로 관직
에 나아가 용궁현감을 지냈다. 1665년(현종 6)에 현종이 온양온천에 행행하여 실시한 온양정시 문과에 장
원급제한 뒤 벼슬이 장예원(掌隷院)의 판결사(判決事:정3품)에 올랐다. 84세에 졸했으며 묘는 인주면 해
암3리 한절골(한자골)에 있다.
<홍우기의 묘>
<홍우기 묘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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