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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대에 탕정의 인근 지역인 천안 풍세 지역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집안에서는 정확히 윤세화가
이곳으로 처음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생몰년이 명확히 기록된 것은 고조부 윤정림이기에 막
연하나마 1640년 경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하여 약 370년 전이라 본다. 혼인을 계기로 분가하면서
이 마을에 와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이지만 명확하지 않다.
부인은 청주한씨(淸州韓氏)로 아들 둘을 두었으나 둘째는 일찍 죽고 큰 아들 윤이평(尹以平) 뒤에도
2대가 독자였다가 현손(玄孫) 형제 이후부터 조금씩 후손이 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체적으로 손
이 많은 편이 아니다. 윤세화와 그 후손들의 묘는 상당수가 마을 앞(북서쪽)에 있는 안산에 모셔졌으
나 농공단지가 조성되고 동서산업이 들어서면서 마을 바로 뒤 성재 자락에 묘역을 마련하여 모두 이
장하였다.
-파평윤씨 족보-
[81] 파평윤씨 윤수회
| 尹壽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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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인물로 파평윤씨(波平尹氏) 20세이며 충간공파(忠簡公波) 음봉면 소동리 입향조이다.
아버지는 참봉 윤선(尹璿)이며 어머니는 순흥안씨로 부사(府使) 안처명(安處明)의 딸이다. 부인은
순흥(順興)안씨(安氏) 수(
)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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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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