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80페이지

79페이지 본문시작

[127] 홍만조
洪萬朝
<1645(인조 23년) ∼ 1725(영조 1년)>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풍산(豊山)으로 대사헌 이상(履祥)의 증손자이고 천안군수를 지낸 탁( )
의 손자며 현감 주천(柱天)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안동 김씨로 동지중추부사 광찬(光燦)의 딸이며 부인은
안동 권씨로 증 참의 진( )의 딸이다. 한성 장흥방(長興坊)에서 태어났고 자는 종지(宗之), 호는 만퇴당
(晩退堂)이다.
25세 때인 1669년(현종 10) 식년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했다. 1678년(숙종 4)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검열·지평·정언·부수찬·부응교를 역임하고 1690년(숙종 16)에 충청도관찰사가 되
었다. 이어 승지·전라도관찰사·도승지·강화유수를 거쳐 1696년(숙종 22)에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청
나라에 다녀왔다. 이후 전라도·강원도·함경도·경상도·경기도관찰사를 지내고 내직으로 와서 대사
간·형조참판·한성부판윤·좌참찬·형조판서·우참찬을 역임했다. 1719년(숙종 45)에 기로소(耆老所)
에 들어갔다. 그 뒤에도 1721년(경종 1) 판의금부사·좌참찬·판돈녕부사를 거쳐 1723(경종 3)에 공조판
서에 임명되었다. 영조가 즉위(1724년)한 뒤 그를 다시 판돈녕부사에 제수했으나 이듬해에 81세로 졸하
였다.
그는 늘 청렴하고 근면하며 모든 일을 공평하고 원만하게 처리하여 오랜 관직 생활에 아무런 하자가 없
었기에 정치적 사건이 많았던 그의 생애 동안 누구도 감히 그의 흠을 잡지 않았다. 1748년(영조 24)에 영
의정에 추증되고 정익(貞翼) 시호를 받았다.
묘소는 아산시 배방면 세교리에 있다. 호조판서 권이진(權以鎭, 1668~1734)이 비명을 지은 신도비가
입구에 있고 묘소에는 1728년(영조 4)에 세운 묘표와 양조은포비(兩朝恩褒碑)가 있다. 그가 1719년(숙종
45)에 기로소(耆老所)에 들었던 기사년(己巳年)에 열린 모임(계회-契會) 당시의 모습을 그린‘기사계첩’
은 현재 보물 제639로 지정되어 세교리에 보존되고 있다. 그의 영정을 모신 자은영당(自隱影堂)이 묘 아
래에 있다.
<홍만조의 묘>
<자은영당 현판>
78

79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