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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개 : 창정리 북동쪽 끝에 있는 마을 구렁산 동쪽이 된는데 뒷산에 산제당이 있고 앞에
큰 개가 있음.
매땅이 : 창정리 동쪽에 있는 마을.
오룡골 : 구렁말 남쪽에 있는 마을.
오통(산이랑골) : 지금 신한제분이 있는자리.
한자골 : 면산이 있는 골짜기.
용골(개척단) : 구어산 동쪽에 있는 마을. 1956년 12월에 난민 250여세대로 개척단을 조직하
여 이곳에 살게했음.
창정리 : 오룡골 남쪽에 있는 마을 효종때 문장 동명 정두경이 이곳에 정자를 짓고 시를 읊
으며 놀았다고 함.
마 산 : 석골 서쪽에 있는 마을. 뒷산의 모양이 말이 드러누운 형상과 같다.
구렁산 : 당개서쪽 갯가에 있는산. 모양이 구렁이와 같이 생기었음.
석 보 : 오룡골 서쪽에 있는 못.1928년 한해 대책 으로 만들었으며 아산만 방조제 완공후
경지정리로 폐지되었다.
당 개 : 산제당 앞에 흐르는 개 이개에는 숭어가 특산인데 모두 서울로 진상하고 본토 사람
들은 별로 숭어를 먹지 못하였다고 한다. 진상용 숭어를 기르던 양어장을 토정 이지함 현감
이 폐쇠하여 농지로 전용하여 어민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산제당 : 구렁산에 있는 산제당.
제비산 : 당개 서쪽에 있으며 광심리들 나가는 곳의 끝에 작은 산. 그곳에서 집터를 확인할
수 있는 기와조각과 돌확절구가 나온다.
안 산 : 창용 2구에서 1구로 넘어가는 곳에 있는 산.
당집벌 : 지금의 신한제분이 있는산.
면 산 : 창용 3구의 뒷동산이라고도 하고 국유지이기 때문에 면산(
)이라 부르기도한다.
뒷동산 : 당개 마을의 뒷산.
동그락산 : 미래 고개가 있는 산.
7)
전설
영인면 창용리 2구 현재도 당개로 불리우고 있는데 이곳은 조선시대 중기부터 어촌으로 이
름난 곳이며 현재에도 어부들이 자손이 거주하고 있다. 현재는 아산만 방조제 축조로 주위
에 펼쳐져 있던 갯벌이 수백 정보의 옥답으로 변했으나 지금부터 40여년 전에는 아산만의
명물인 강다리(길이 15cm의 물고기)와 숭어가 당개 앞에서 다량잡혀 그 고기를 사러 오는
장사꾼으로 장사진을 이루어
를 이루었다. 특히 4월에는 어획량이 많은 시기로서 상인
과 외지로부터 구경꾼이 많이 모여들어 광대(줄타기)놀이와 농악등을 주야로 공연하여 돈이
흔하여 흥청거림을 '4
당개' 라고 한다. 5 로 접어들어서 고기떼가 사라지고 모든 어업자
들이 철수하게 되어 흥청거리던 당개는 조용한 촌락으로 되돌아 갔다. 그래서 인산인해를
이루는 4 은 '4 당개 라
하고, 5 은 쓸쓸한 촌락으로 되돌아가게 되어 '5
망개 라
한다.
8)
전통놀이 및 대표적 집단행사
창용리는 대동계가 리별로 있으며, 부녀회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9)
특별하게 소개할만한 인물
이 마을에서 특별하게 소개 할만한 인물은 조사되지 않았다.
10)
종교단체
세일교회 영인면 창용1리 전도사 유명신 종파 : 장로교
창용구세군 교회 영인면 창용3리 사관 정오정 종파 : 구세군
11)
공장현황
신한제분(주) 대표 김일웅 창용107번지 생산품목 : 제분업 도정
세아섬유 대표 박상인 창용 산213-2번지 생산품목 : 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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