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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비 생산을 위해 풀을 한 짐씩 베어서 짊어지고 갔던 일 등이 그의 기억에 남아 있다.
16세인 중학교 3학년 때 그는 6·25전쟁을 맞았다. 아산 음봉 월랑리로 피난을 갔는데,
처참한 모습을 목격하는 화는 면했으나 의용군으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계속 산속에서
지내야 하는 고초를 겪었다. 새벽에 높은 산으로 올라가고 밤이 깊으면 마을로 내려왔
다. 어린 나이에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으나 이제 생각하면 그 덕분으로 강건한 체력
과인내심을갖게된듯하다.
그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일찍 서울로 유학, 양정중학교를 졸업하고 전쟁 때문에 천안
농업고등학교에 입학하여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양정고등학교로 옮겨서 졸업하였다.
지역사회에서 살아오며, 천안농고를 다닌 것이 교우 관계와 의장활동 등에 도움이 되기
도 했다. 대학교는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로 진학하여 졸업하였다. 그가 전공을 살려
서 서울에서 자리 잡지 않고 가업을 잇기 위해 성환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이, 지역
사회를위한공헌의시발점이되었다.
본래 장항선의 분기점은 성환역으로 계획이 수립되었다고 한다. 당시는 천안역보다 규
모도 크고, 청일전쟁의 성환 전투에서 일본군이 대승을 거둔 이유로 다른 역보다 역장
의 급이 높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철도부지로 땅을 많이 빼앗기게 될 것을 두
려워 한 지주들이 심하게 반대해 천안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만일 성환역이 장항선 분
기점이 되었더라면, 더욱 중요한 교통의 요충지로서 성환의 발전 속도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성환은 소도시이지만 역 앞의 도로는 직선화되고 구획정리가 잘된 편이다. 해방 직후
에는 꽤 큰 건물과 병원, 식당, 양조장, 다방 등이 늘어서 있었고 역 주변에는 여인숙이
많았다. 대표적인 건물은 동인병원, 성환의원, 양조장, 버들다방 등이다. 또 열차 이용객
들을대상으로도시락을팔던모습이나,길게늘어선노점등의모습도볼수있었다.
그런대로도시의면모를갖추고있었는데,다른도시에비해발전속도가늦어서,계속
이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큰 변화를 감지할 수 없었다. 그나마 변화를 느끼게 한 것은
얼마 전 수도권 전철의 개통이라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수도권 남부 지역과 경기도 경
76 천안서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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