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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山의
미기울어최후의결전을각오하고옷을벗은후에손가락을단지하여그피로옷에혈서를
써서따르는노복에게주면서만일네가이전쟁에서살아남는다면이옷을집에전해주라
고당부하고적진으로뛰어들어가활로적을사살하다가화살이떨어짐에창으로적을찌르
며독전하다가장렬히산화하시었으니그날이바로공이23세되시는해의정월초3일이었
다.그거룩한위국단충이어찌임진왜란에명장김덕령장군이나세조조의명장남이장군
만못하다고할수있는가?
더욱이공의애마가울부짖으면서천리길을달려와혈의의비보를전하고하루밤하루낮
을먹지도않고울다가죽었으니우리역사상전무후무한초유의일이다.
이를지켜본부인죽산박씨는혈의를땅에묻어공의초혼단을만들고그아래에공의애
마를후히장사지내주고그곳에여막을짓고6년간시묘를살다가공의기일을맞이하여제
를지내려고하산하여목욕을하고일어나시다가혼절하여운명하였기에공의초혼단에합
폄하였다.
공이 순국한지 65년후인 숙종28년에 덕산현감 이근행과 유림100여명이 나라에 포창을 발
의하니조정에서이를실사한연후에증병조참의를추서하고충신및열녀정려문을하사덕
산현감에게정려각건립을명하였다.그리고공의유물을보관하도록석함을어명으로하사
하였다.
그로부터 157년후인 1858년[철종9년]에 중수하였고 1986년 11월 19일 공의 내외묘와 애
마의묘석함정려문을함께묶어충청남도문화재제282호로지정하였다.
공의상세한행적은증직의서훈을받은후에당시영의정조두순이찬한행장이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이곳은 공이 어려서부터 지극한 효성을 다한 곳이니 효지단이요. 국가의
위난시를 맞이하여 목숨 받쳐 싸우니 충지단이요, 비록 말이라도, 주인을 위하여 죽었으니
의지단이요, 부인 죽산박씨는 6년 시묘후 남편 따라 죽으니 열지단이라 문화재로 지정되었
으니후세인들의교육의장으로활용하였으면하는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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