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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명
창정리
27%
27%
5%
4%
10%
11%
16%
당개
22%
22%
4%
10%
1%
9%
1%
31%
용골
8%
10%
6%
9%
8%
4%
1%
3%
51%
매땅이
36%
18%
3%
5%
2%
1%
3%
32%
- 학생분포
구분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마을명
창정리
4
3
2
5
당개
10
5
6
3
용골
15
10
7
5
매땅이
3
3
4
9
- 최고령자
창령리 마을은 83세의 최용운 할아버지이시고
당개 마을은 87세의 방동완 할아버지이며
용골 마을은 94세의 김소례 할머니이시다.
매땅리 마을은 87세의 한상희 할아버지, 이창희 할머니이시다.
- 호당 평균 소득
창정리 마을은 년/800만원
당개 마을은 년/1,000만원
용골 마을은 년/1,400만원
매땅이 마을은 년/1,000만원
3)
자연경관
창용리는 마을앞 아산만 갯벌 60여만평의 간척지가 있으며 전통적인 농촌 마을이다.
4)
마을 변천과정
본래 아산군 이북면의 지역인에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창정리 ,용동리 ,용서리를 병
합하여 창룡이라 하여 영인면에 편입됨.
5)
입향
창용1리 : 온양정씨 정두경이 정자를 짓고 살았으나 그 후손은 현재 살고 있지 않다. 특별
한접성촌이 없으며 김해 김씨 6세대, 전주이씨 5세대와 그외에 각성이 거주하고 있다.
창용2리 : 처음부터 아산 이씨가 살았으나 지금은 3집뿐이며 광산 김씨 감찰 김척의 후손이
11대에 걸쳐 세거하나 후손은 2세대 뿐이며, 후에 들어온 순안군 이 세청의 후손 전주이씨
가 제일 많이 거주하는 각성마을이다. 김척의 묘는 월출산에 있다.
창용3리 : 용골에는 원래 이씨, 권씨, 송씨 3가구가 살았는데, 1956년에 난민 250세대가 이곳
에 들어와 정착한 뒤에 각 씨성을 이루며 살고 있다.
창용4리 : 매땅이에는 1926년경 박하신
이석원
2세대가 살다가 그 후에 광산 김씨가 정착
하여 13세대가 살아오던중 1956년 창용리 개척단 소속 난민 50세대가 들어와 살게 되었으
며, 현재 총 41가구 중 광산김씨 9세대, 김해김씨 2세대, 전주이씨 3세대등이 살고있다.
6)
지명
구렁말(구룡말) : 당개 서쪽에 있는 마을,구렁산서쪽이 되며 산제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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