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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山의
이억(李檍)(1615-1637)
이억의 정려문 (봉산면 금치리)
중수기
공의휘는억이요호는신암이며증병조참의는남한산성의구국전에서순국한지65년만에
나라에서추서한훈작이다.
공은현감휘석립과함평정씨사이에서1615년음3월11일덕산현외북면금치리에서출
생하였다. 공의 본관은 경주로 시조는 신라 6촌장의 한 분인 알평공의 후예이시다. 공은 어
려서부터 아버지께서 외직에 계시기 때문에 향리인 금치리에서 조부의 슬하에서 자라면서
훌륭한인재감으로주위의촉망을받았다.
나이6세에조부께서출타하시어밤늦게까지돌아오시지않으니먹지도자지도않고기다
려주위로부터지극한효심이라고칭송을받았으며밤을새면서주야로독서에열중하고틈
틈이무예를연마하니당시영상구인후와공청도병사이의배장군께서공을격려했다는것
을 보아도 비록 20세의 약관인데도 공에게 거는 기대가 대단하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하기에국가존망지추를당하여왕께서남한산성으로파천하고그산성이오랑캐군사
10만여로포위되어나라의운명이풍전등화와같으니후세사가들이이전쟁을병자호란이
라고한다.
이에왕께서간절한격소를전국방방곡곡에부치게하니공께서이를보시고어찌출전하
지않을수있는가.공은향리친우와가노등70여기를이끌고충청병사이의배장군휘하에
들어가 장군의 비장으로 출정하여 독전하였다. 그러나 성안에는 일만 여 군병과 50일분 식
량뿐이었는데 성은 오랑캐에게 포위된지 18일에 식량은 바닥이 났고 추위는 혹독하고 1만
여군병의사기는땅에떨어진상황에서어찌저무뢰한오랑캐의위세를감당할수있는가공
은허기진병사를격려하여일으켜세우고이의배장군과함께결사항전하였으나전세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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