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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의 학자인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의 문인으로‘강문 팔학사’
로서 학문으로 이름이 있었다.
사마시와 문과에 급제한 뒤 정언과 지평 등 언관직을 지냈다. 사돈 집안이자 평생의 벗이며 수암 문
하의 동문인 외암 이간(李柬)과 함께 낙론(洛論)을 주장했다. 일찍이 이간과 함께 송악면 강당골에 관
선재(觀善齋)를 짓고 강학하였으니 지금까지 강당골 관선재의 문천사(文泉祠)에 함께 모셔지고 있다.
윤근의 후손은 송악 역촌리에 몇이 있고 주로 천안과 서울 등 외지에서 살고 있다.
[78] 파평윤씨 윤동명
| 尹東明
<1601년(선조34년)~1678년(숙종4년)>
조선 후기의 인물이며 파평윤씨(波平尹氏) 27세로 상호군파(上護軍派) 음봉면 동암리 입향조이다.
아버지는 윤정설(尹廷說)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이다.
윤동명의 자는 직보(直甫)이며 통덕랑(
德郞)에 올랐다. 부인은 진주유씨(晋州柳氏)로 동지중추부
사 유도(柳覩)의 딸이다.
윤동명이 들어올 때 그의 조카인 윤광이(尹光履, 1621~1661)도 함께 들어왔다. 윤광이의 자(字)는
여신(汝臣)이며 부인은 진주유씨(晋州柳氏)로 생원(生員) 유정상(柳定相)의 딸이다.
이들은 천안 목천에서 여러 대를 살던 집안으로 숙부와 조카가 함께 아산 음봉 동암리로 이사하였
으며 지금까지 후손들이 이어져오고 있다.
묘는 음봉면 동암리 가족묘지에 있다. 후손은 음봉면 쌍암리와 산동리에 많이 산다. 제사는 음력
10월 13일이다.
[79] 해평윤씨 윤득실
| 尹得實
<1768년(영조44년)~1823년(순조23년)>
해평(海平) 윤(尹)씨 아산 입향조이다. 영의정 윤두수(尹斗壽, 1533~1601)의 6세손이고 지중추부
사 흔(昕, 1564~1638)의 5세손이다.
자는 성보(誠甫)이고 부인은 남양홍씨로 홍득권(洪得權)의 딸이다. 혼인을 계기로 처가 근처인 아산
둔포 신항리로 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손자 윤웅렬(尹雄烈)의 출세에 따라 이조참의에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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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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