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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량진에서 출생하여 서울 제
1
고보에 재학중
3 1
운동에 참가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복
역하였고 그후 상해
上海
에 건너가 수년간 망명생활을 했다
귀국 후
1923
년부터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현 중앙일보가 아님 등의 기자로 있으면서 시와 소설을 쓰고
, 1925
년 동아일보에 영화소설 탈
춤 을 연재했다
이를 계기로 영화계에 데뷔
, 1926
먼동이 틀 때 를 원작 각색 감독하였다
동방의 애인
」「
영원한 미소 등의 장편소설을 신문에 연재했다
그 후
1932
년 당진군 송악면 부
곡리에 내려와 농촌계몽소설
상록수 를 써서
1935
년 동아일보 창간
15
주년기념 현상소설에 당선되었
. 1936
년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대회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했다는 신문 호외에 감격하여 그
뒷면에
오오 조선의 남아여
란 즉흥시를 쓴 것이 마지막 글이다
작품은 대중적이며 계몽적인 것이
었고 특히 장편소설 상록수 는 당시 브나로드
(Vnarod)
란 민족주의 운동의 의사를 반영한 것이며 작품
으로 소설인
직녀성 과
황종의 최후 도 있다
. 1936
상록수 를 인쇄하여 단행본으로 발간했
는데 그만 장티프스에 걸려 가료 중 서울에서 작고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용인군 수지면 신봉 리에 있고 지난
1
1976
년 월 당진읍 남산에 기념시비 상록탑이 건
7
립되어 공의 애국시 그날이 오면
전문이 음각되어 있고 그후 매년
10
월 당진읍에서는
상록문화
제 가 거행되고 있다
그리고
상록수 를 집필하던 필경사가 송악면 부곡리에 보존되어 있다
필 경 사
13.
박 영 호
朴暎浩
당진군 당진읍 우두리 출신으로 천도교 신자로 애국 독립운동이 투철하여
1919. 3. 1
운동에 헌병 경찰
의 총검 앞에서 분연히 일어나 당진지방 천도교 신자를 위시하여 수많은 동지를 규합하여 수만 매의 독
립 선언서를 사재를 기울여 인쇄한 후 온양 당진 서산 개군을 전담 배포하며 자주 독립정신을 고취하
3
다가 왜경에 구속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불굴의 의지로 천주에 길이 빛날 충성을 다 바친 독립
운동 열사이다.
14.
이 강 인
李康仁
1895
년 홍성군 홍동면에서 출생
出生
한 이강인 지사는 출생 후 한자를 수업하며 농업에 종사했으나
1910
년 한일합방이 이루어지자 이를 개탄 당시
25
세의 약관의 나이로 고향에서 여러 동지를 규합하여
일제의 침략야욕에 대항 분연히 일어났다
. 1919
년 월 동지
4
58
명과 함께 만경산이 꺼질듯이 독립만세
를 외치며 항일운동을 시작한
지사는 보안법 위반이라는 미명아래 왜경에 체포 홍성 경찰서장으로부
터 태형 삼십대의 형을 받았다.
3 1
운동이 우리나라의 독립으로 승화되지 못하고 실패로 끝나자 일제들은 더욱 광분하여 우리 민족
을 더욱 탄압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강인 지사는 이에 굴하지 않고 국내의
독립운동 조직에 독립운동지사와 긴밀히 연락하여 일본 경찰의 혹독한 제재와 철저한 경계의 위험 속에
서도 오직 구국일념으로 면민들에게 우리민족의 처지를 역설함으로써 독립 정신을 함양시키는데 전력
경주하였다.
편저 박상건
唐津文化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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