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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다녔던 초등학교 시절의 회고담이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잊을 수 없는


,
일들이엊그제의일처럼생생하다.3학년의어린나이에4km를걸어모내기지원을나가곤

?


했는데,선생님의인솔에따라당연한것처럼받아들였다.또송탄유를만들기위해소나무

?

뿌리 굵은 것을 캐내느라 고생이 심하기도 했다. 질문자는 천안문협 회원이었던 남욱현이


그의친구인것을알게되었다.재담가인그의어린시절이궁금했는데,당시에도잘웃기고
?


노래를잘불러서친구들에게매우인기가많았다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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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인 중학교 3학년 때 6.25전쟁을 맞았다. 진외가가 있던 아산시 음봉면 월랑리로 피
난을갔다.다행히매우외진마을이어서처참한모습을목격하는화는면했으나,의용군으
로끌려가는것을피하고자계속산속에서숨어지내야하는고초를겪었다.
서울 양정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전란기여서 천안농업고등학교(현 천안제일고등학교)에 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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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2학년 1학기까지 다녔다. 그 후에 양정고등학교로 복교해서 졸업하였다. 학창 시절을
회고하며 잊을 수 없는 스승님이 계신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의 김중식 선생님이다. 무엇보
다 철학적인 말씀으로 진로를 설계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특히, “만(萬) 고랑의 땅도
작은기술만못하다.”라는말씀을70년이지난지금도기억한다.
대학교는 중앙대학교로 진학하였다. 질문자의 고향 어른이자 독립운동가인 임영신 총장
에 대해 물었다. 이신애 독립운동가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천안의 자랑인 유
관순 열사와 함께 옥중만세운동을 주도한 그녀가 오랜 투병 생활을 할 때, 임 총장이 자주
찾아왔다는 사실을 알고 기억하고 있었다. 임영신은 이 지역과도 인연이 있다는 말씀이다.
입장양대리에중앙유치원을만든것이교육사업의시작이었는데,이후에중앙대학교를설
립했다고 한다. 나라 사랑의 마음이 줄어들까 걱정되어 결혼하지 않았다는 임 총장이 훈화
를통해가장강조한것은,국가의완전독립을위해서는열심히배워야한다는것이었다.
당시는 시골에서 대학교를 졸업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대졸자라면 대부분 도시에서 직
장 생활을 하게 마련이었으나, 그는 가업인 과수원 경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60년 전이니, 지금과는 매우 달랐다. 공무원이나 회사원의 보수가 낮은 반면에 배는 고급
과일로 높은 가격이 형성되었기에 아버지의 권유가 있었다. 보통 사람의 생각대로 편한 직
업을생각할수도있었지만,그의한눈팔지않은성실한과수원경영은농협조합장을맡기
까지18년이나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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