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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못해늘안타깝다.그래서한국전쟁때분실된자료에늘미련이생긴다.

남,
“옛날에는왕진나루가임금왕자갈진자로왕지진(王之津)이었어요.일제강점기에일본


사람들이 지명을 격하시키기 위해 못왕자와 나루진자(汪津)로 바꿨다고 합니다. 강 건너


가백제도읍지입니다.칠갑산에는큰절이있었고,왕이절을가려면독정·팔풍정·육정


을거쳐야했는데,왕이목이말라하니아낙네가이곳샘물로물을드렸다고합니다.왕은


그 아낙네를 궁녀로 삼았습니다. 아낙의 남편은 부인을 기다리다 죽었다고 합니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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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홀로 독자 정자 정자 독정(獨亭)이로 지어졌답니다. 또한 남편이 죽고 나니 마을에 질
병이퍼졌다는전설도있습니다.이렇게백제시대부터용왕제를지냈다고들었습니다.충
분히문화재가될수있다고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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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왕제는왕진1리주민들만지낸다.일제강점기에도6·25에도,코로나19때도,시대가
바뀌니부정한것을가리는것도간소화는되었지만,용왕제만큼은빠짐없이지냈다.들이
넓은 왕진1리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 다행스럽게도 젊은이들이 오히려 용왕제에 대한
관심이많다.1980년대만해도93세대였으나,현재는70여세대며노인은50여명정도다.
‘정월열나흘창고개에사는사람들모두삼가두번절하며아뢰나이다.용왕님의신령
을애오라지우리동민이영접하오니,항상수복의길을열어주시옵고,운수대통하게하옵
시며,소원을이루어주소서.타향에나가사는자녀들도병없이오래오래살게하옵시며,
부귀와영화를누리게하옵소서.’-용왕제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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