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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아들 유자기의 딸은 기묘사화에 이은 신사무옥(1521년)으로 인근 마을인 배방읍 휴대리로 낙향
한 안산김씨(安山金氏) 모기재 김필의 외아들 김원회(金元會)와 혼인하였다.
유형장의 묘는 세교리 안골에 있으며 뒤에 묘가 실전된 그의 아버지의 단과 할아버지의 묘소도 이
곳에 옮겨 모시고 있다. 그의 후손은 매우 널리 퍼졌다. 배방읍 세교리를 중심으로 공수리와 구령리,
온천동 일원, 송악면, 염치읍, 신창면, 선장면, 당진군 우강면과 합덕읍, 천안시 성정동과 성남면, 동
면, 공주시 정안면과 사곡면, 그리고 대전시, 경기도 용인, 서울, 인천 등 각지에 널리 퍼져 살고 있다.
[77] 파평윤씨 윤근
| 尹根
<1574년(선조 7년) ~ ? >
조선 중후기의 문신으로 파평윤씨(坡平尹氏) 23세이며 소정공(昭靖公)-한성공파(漢城公派) 아산시
지역 송악면 역촌리 입향조이다. 송악면 역촌리에 살다가 현재 서울에 거주하는 후손 35세(世) 윤명
희(尹鳴熙, 89세)씨의 12대조이다. 종사를 보고 있는 윤명희씨는 그가 실제로 송악에 와서 살지는 않
았다고 한다. 그가 귀양 가서 죽은 뒤에 아들이 어머니를 모시고 외가로 내려왔을 가능성도 있다. 다
만 족보 등 그의 선후 세계(世系)를 알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할 수 없고 입향(낙향)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찾지 못해서 일단 그를 입향조로 한다.
윤근의 고조는 윤숙(尹
), 증조는 윤백령(尹伯齡), 조부는 윤항(尹沆)이다. 아버지는 문과 급제
(1564) 후 강원도관찰사를 지낸 윤희길(尹希吉, 1534~?)이고 어머니는 영산신씨(靈山辛氏) 신종(辛
琮)의 딸이다.
윤근의 자는 회원(晦遠)이고 호는 매음(梅陰)이다. 후손들은‘매음공’
으로 칭한다. 1606년(선조
39)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612년(광해군 4)에 식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1620년(광해군 12)에 지평에
제수되었으며 이듬해 물러났다가 그 다음해(1622년)에 평안도에 어사로 파견되었다. 대북(大北)의
영수인 이이첨(李爾瞻)을 공격하였다가 평안북도 위원(渭源)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하
였다고 한다. 묘는 서울 구파발에 있었으나 지금은 송악면 수곡리 가족공동묘지로 이장하였다.
부인은 예안이씨(禮安李氏) 송악면 외암리 입향조인 이사종(李嗣宗)의 장남인 이륜(李崙)의 딸이며
그는 예안이씨와의 혼인을 계기로 진천에서 송악면 외암리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대략 400여 년 전
으로 본다.
그의 후손 중 현손(4세손)인 윤혼(尹
, 1676~1725)은 자가 회이(晦爾)이고 호는 천서(泉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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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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