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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자연 경관
방아다리
마을은 마을 앞에 봉재리저수지와 신유리저수지가 합쳐져 흐르는 천이 있는데,
이 천은 둔포리와 운교리를 나누는 경계선이 된다. 마을 옆에는 둔포6구인 백남아파트가 보
인다. 그리고 마을 뒤에 산이 있는데 마을사람들이 산을 개간해서 열무나 수박을 심고 있다.
그리고 마을에 낙농가구가 있어서 곳곳에 젖소를 키우는 목장이 보인다. 방아다리에는 예전
에 서울로 가는 큰길이 나 있어 교통로 역할을 하였으며 현재 역시 평택 운교리
(둔포) 아
산만쪽으로 가는 서해안 고속도로가 공사중이다. 봉재저수지와 신유리 저수지가 합쳐져 이
곳 방아다리 앞으로 흐르며 둔포리와 경계선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돌보
마을은 염암산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둔포천이 옆에 흐른다. 마을 앞에는 산이 있고,
마을 뒤에는 들녁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마을 입구에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이 서 있는 마을이다. 돌보에는 방아다리 앞(관리대의 더러미 북쪽에 있는 들)에서부터 시작
되는 더러밋들이 있으며 벼락이 떨어져서 큰 바위가 여러조각으로 된 벼락바위가 있었으나
둑을 쌓는 재료로 모두 없어졌다. 또한 연암산에서 발원하여 봉재리 봉우제를 지나 운교리
에서 웃밥골내와 합쳐지는 봉우재 내가 흐른다.
4)
마을 변천 과정
본래 아산군 삼북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방교리, 석보리와 전 천안
군 모산면 가리동 일부를 병합하여 운교리라하여 아산군 둔포면에 편입되었다.
5)
입 향
방아다리 마을은 마을형성시기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략 1700년대로 박씨가 터를 잡고 살
았다고 한다. 방아다리 마을은 김경찬씨로 6대에 걸쳐 살고 있다고 한다.
둘보 마을은 마을형성시기는 방아다리 마을과 비슷한 시기인 1700년대로 선씨가 터를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70년대~80년대에 인구가 가장 많았지만 현재는 이농현상으로 마을의 젊은
이들이 빠져나가 노동인구가 부족하다.
6)
지 명
방아다리
: 운교리에서 가장 큰 마을. 지형이 방아의 다리처럼 되었음. 전에는 이 마을 앞
으로 서울로 통하는의 큰 길이 났었음.
더러밋들
: 방아다리 앞 곧 관대리의 더리미 북쪽에 있는 들
보 : 방아다리 동쪽에 있는 마을. 앞들에 물을 대는 보가 있고, 그 옆에 바위가 있어서
길을 가는 사람들이 쉬어 세수하기에 좋았다하여 돌보 또는 석보리라 부른다.
석보리
봉우재내
: 연암산에서 발원하여 봉재리 봉우재를 지나 운교리에서 웃밭골내와 합친다.
벼락바위
: 돌보 앞에 냇가에 있던 바위. 벼락이 떨어져서 큰바위가 여러 조각이 났는데 뚝
을 쌓는 재료로 모두 없어졌음
7)
전 설
방아다리
마을 전설­
옛날 방아다리 마을에 돌림병이 돌고 있었는데 어느날 중이 찾아와 성황제를 지내면 돌림병
이 낮는다고하여 지금까지 매년 성황제를 지내고 있다.
벼락바위
운교리 앞 냇가에 있던 바위로 벼락이 떨어져서 큰 바위가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졌다하여
"벼락바위 라
"
부른다. 현재는 뚝을 쌓는 재료로 사용되어 모두 없어졌다 한다.
8)
전통놀이 및 대표적인 집단행사
방아다리 마을은 음력 1월 3일 저녁에 당제사를 지내고 있다. 매년 어버이날에는 마을어르
신들을 모시고 경노잔치를 열고 있다. 방아다리 마을은 옛날 장승에서 당제와 성황제, 산신
제를 지냈지만 근래에 들어서 마을 앞에서 성황제를 지내고 있다.
돌보 마을은 매년 어버이날에 마을어르신들을 모시고 경노잔지를 열고 있다.
9)
특별히 소개할만한 인물
이 마을에서는 특별히 소개할만한 인물은 조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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