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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병장수용왕님께빌어



음력정월열나흗날,청남면왕진1리창현(창고개)마을에서는‘용왕제(龍王祭)’를모신


다.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우물에서 지내는 용왕제는 2천 년이 넘었다는 설이 있지만, 왕


지마을의가마터발굴로보아적어도1400여년은넘으리라짐작한다.유왕제(流王祭)또

는샘제(새암제)라불렀던것이2001년에‘용왕제’로이름을바꾸었다.마을의평안과주
민들의무병장수를위해동네우물이마르지않기를용왕님께빌었다.
“백제의 수도를 부여로 옮긴 후, 정산고을(정산·목·청남·장평면)의 곡식들이 이 동
네에모였다가왕지나루를통해사비나루로들어갔지요.이때창고개마을에곡식운반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게 되고, 우물이 하나밖에 없어 우물물이 부족하게 되었지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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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서 용왕제를 지내게 되니, 난데없이 물이 솟고 자손이 번성하고 주민들이 건강해 일이
잘되었답니다.”
용왕제를 주관하는 곽덕근(1954~ )씨의 본관은 현풍이며, 태어난 곳은 서천이다. 4살
때 칠갑산자락에 있는 큰집으로 대를 잇기 위해 양자로 왔다. 서천에서는 대가족이었다.
당시당숙은온양에서수사과장으로있었는데한국전쟁때우물에수장되었다고한다.큰
아버지또한서천창고에불을질러사망하니,집안이어려워져피난으로오게되었다.21
살부터이마을에서살았다.
곽덕근씨는부모님을따라자주산에올랐다.산에오르며,어렸을때부터자연스레용
왕제에 관심을 가진 것 같다고 한다. 1970년대에 왕진1리 이장을 맡으며 용왕제를 부활
시켰다.
“처음 총무를 할 때, 70년대 중반은 이 동네가 어려웠어요. ‘살기도 어려운데 목매면서
까지제를지내느냐,간단하게지내지.’라고하는마을사람들도있었습니다.제아버지와
어르신들이도와주셨기때문에용왕제가부활할수있었습니다.용왕제를지낸자료가창
호지로이만큼있습니다.옛용왕제자료는6.25때당시총무가잃어버렸다고합니다.제
가이장을하면서그때부터자료를창호지에기록했는데,80년대에총무가자료를버리고
간단하게기록만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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