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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서산천수만의옛모습
4)해안가에서부업(副業)으로행한화염(火鹽)
수심이 얕고 개펄이 넓게 조성되어 있는 천수만의 해변 마을들에서는 소금을
직접 만들어 먹었다. 전통적인 소금 생산방식인 불에 소금물을 졸여서 소금을
생산하는 것으로,‘화염(火鹽)’이라 불렀다. 1950년대 이후로는 이곳에 전매청
에서 대규모 천일염전을 만들고 손쉽게 천일염을 생산하면서 그 전통은 소멸
되었다. 마을마다 화염을 굽던 곳은‘벗’, , 등의 지명이 붙어 있
다. 그동안의 서산군에 보고된 자료인『인지면지』와『서산지명사』등에서 다
수의 염벗이 확인되었다. 인지면에는 애정리 1·2구, 야당리 2구, 산동리 점터,
모월리 한갯골, 모월리 벗등성 등에서 화염을 했으며, 고북면에는 남정리 남정
염안, 남정3리 도방장터, 기포리 1리 염전자리, 벗개(1950년대 중단), 기포리 2리 벌
말[평촌], 정자리 충대염전, 봉생리 2리 단대염전, 벗둑개 등에서 화염과 천일염
을생산했다고한다.
그러나 일찍이 중단된 화염에 대한 기억은 현재 83세 이상되신 분들 사이에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부모 세대가 하던 것을 도와주며 경험한 것이며,
70대는화염했다는소리를들어보았을뿐직접경험하지는못했다고한다.
현재 83세 이상 되신 제보자들만이 20세 경에 2~3년 경험했을 뿐이었다. 제
보자들은 20세 이전의 1~2년의 짧은 경험만을 했기에 화염과 관한 명칭이나 작
업과정 등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전해주지는 못했다. 제한적이나마 제보자들에
게전해들은화염을소개하면아래와같다.
우선 화염은 농업을 하는 이들이 농한기를 이용해서 행하던 부업(副業)이었다.
“소금 값이 금값이여”라고 하는데, 고소득을 올릴 수 있었기에 부지런한 사람
들이 겸업으로 행했던 것이다. 이 지역에는 땔감이 부족해서 화염하는 땔감은
안면도 등지에서 구입해 와야 했다. 이 같은 생산방식은 태안 등지에서 전업
으로 행하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화염의 실태를 이해하기 위해 우선 1926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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