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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문화유씨 유형장
| 柳亨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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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문화유씨(文化柳氏) 17세(世)이며 소윤공파(少尹公派) 아산시 배방읍 세교리
안골 입향조이다. 선대는 주로 경기도 양주 지역에 거주하였다. 현재 세교리에 거주하는 후손 32세
(世) 유경렬(柳慶烈, 70세)씨의 15대조이다.
유형장의 고조는 공민왕대의 공신이고 상호군에까지 오른 문화군(文化君) 유계조(柳繼祖, 1333∼
1374)이고 증조는 고려 말에 문과 급제 후 조선 개국공신과 좌명공신(佐命功臣)4등에 책록되고 우의
정에 오른 문성부원군(文城府院君) 유량(柳亮, 1356∼1416)이며 조부는 종부(宗簿) 소윤(少尹)을 역
임한 소윤공파 파조 유한생(柳漢生, 1402~1449)이다. 아버지는 통정대부로 천안군수를 역임한 유훈
)이고 어머니는 안동김씨(安東金氏)로 감찰 김맹염(金孟廉)의 딸이다.
그는 선장(善長), 도장(道長), 수장(壽長), 형장(亨長) 등 4남1녀 중 넷째아들로 태어났다. 음직으로
율봉도 찰방(栗峰道 察訪)을 지내서‘찰방공’
으로 칭한다. 유형장은 연산군(1494~1506 재위)의 통
치에 반대하여 벼슬을 버리고 배방읍 세교리 안골로 낙향하여 은거하였다. 정확한 연도는 확인할 수
없지만 무오사화(1498년)나 갑자사화(1504년)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며 500여 년 전의 일이다.
부인은 경주설씨(慶州
氏)이며 사직 설치심(
致深)의 딸이다. 경주설씨는 일찍부터 배방읍 장재
리를 중심을 인근 지역에 살아왔던 집안이다. 유형장은 아버지가 천안군수로 재임할 때 경주설씨와
혼인을 하였고 그 인연으로 낙향 지역을 세교리로 정했을 것으로 본다.
그는 자수(自修), 자숙(自淑), 자기(自淇), 자응(自應) 등 4남1녀를 두었으며 이들이 각각 5남, 2남1
녀, 1남2녀, 3남1녀를 두었으니 처음부터 자손이 많고 크게 번창하여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유형장의 묘와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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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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