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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제를 지내고 싶어도 생기복덕이 안 맞으면, 못 지내죠. 2017년 전까지는 생기복덕

남,
을다가렸습니다.그것을못가리면제를지내도껄끄럽습니다.주민도줄고마을이고령


화되면서안지낼수도없고,언제까지우리가이끌어가야할지걱정입니다.내년엔중단될


지 모르더라도,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데까지만 하자’ 이렇게 끌고 나가고 있습니다. 우


리밑으로자손들이있더라도젊은사람들은몰라요.‘이렇게하는거야’라고가르쳐줘도


‘뭐하러합니까?’라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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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재관 총무가 침통해 하자, 김진섭 계장도 한마디 거든다. “마을에서 할 만한 분들이,
산에올라가고내려가고,밤중에도갈수있는사람이있을지모르겠네요.산에라도올라
가려면건강한사람이있어야….”
광평리는 행정구역이 4반으로 나뉘었는데, 산신제는 2·3반만 지낸다. 살기가 어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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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각자따로했던것같다고김진섭계장은말한다.“2·3반사람들이똑똑해서산신
제를 지내온 것 같다.(웃음)” 성황리에 산신제를 지낼 때는 1960~1970년대였다. 30가구
정도였으며당시에는한집에4~6명이살았다.핵가족이없었고,약100명의주민이있었
다.현재는16가구에31명의주민이살고있다.광평리의주민분포는80세이상이90%가
넘으며,부부장수가특징이다.
비나이다비나이다끝까지도와주십시오
일제강점기때도산신제를빠지지않고지냈다.할아버지와아버지로부터보고듣고배
운것이‘우리가사는동안은계승하자’라는것이었다.전통을지키기위해한약속이므로,
단단히마음먹고행해왔다.마을의안녕과평화를위해지낸산신제는정신적으로큰지
주가되었다.당연히계승되어야하는데마을에젊은사람이없으니안타깝다.
산신제 비용은 자진해서 내는 사람도 있었지만, 풍물을 치며 걸립을 했다. 쌀과 현금이
었지만, 주로 쌀이었다. 지금은 걸립은 하지 않고, 옛날부터 내려오는 자금(쌀 한 말씩 모
아 장리쌀을 놓았다)을 사용하고, 따로 걷지 않고 자진해서 내고 있다. 축문을 쓰게 되면
정성비도냈다.또한김진섭계장이마을의샘(우물)일을해주면조금씩돈을내곤한다.
산신제당은당산이라고하는데자연석바위이다.옛날부터내려온것으로아무것도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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