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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건강과마을의안녕기원



화성면 광평리 산신제는 1904년 ‘광석리 산신제’로 시작됐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으로 광석리는 광평리로 리명이 변경돼, 산신제의 명칭도 ‘광평리 산신제’로 변경됐다. 화


성면광평리산11번지를당산으로지정하고매년음력정월초사흘에지내는‘광평리산신

제’는산신령님께마을주민의건강과마을의안녕을기원한다.
산제계장김진섭(1940~)씨는70여년전부터산신제를보아왔다.본관은김해다.보령
면천동99번지에서태어난김진섭씨는3살때조부님과부모님이이곳에자리를잡았다.
조부님은 먹고살기 위해 이곳에 왔으나, 땅이 없어 화암리의 임봉호 씨 논에서 아버지 김
용봉과 함께 농사를 지었다. 본관이 경주인 어머니 최성녀의 친정은 보령 소래다. 현재 김
진섭계장은손자와이곳에서5대째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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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농사짓는부락이기때문에동민들이하나하나,아이들부터노인까지건강을위
해서 지선비 제단이 이뤄져서 시작되었습니다. 집집마다 집안 식구를 위해서 정성을 들이
고개인적으로올라가서절하고축원합니다.”
산제 총무 민재관(1950~ )씨는 3대가 이곳에서 살고 있다. 본관은 여흥이며, 한국전쟁
때황해도에서살던아버지민태석의피난으로정착하게되었다.민태석은이곳에서배천
조씨 종희와 혼인하였다. 민재관 총무는 일밖에는 모르는 부모님을 그대로 배워 농사 박
사가되었으며,농촌지도자로평생을살았다.
“다른 지역은 산신제를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지만, 이곳 산신제는 엄하게 지냈습니다.
초사흘에산제를지낼수있는마땅한사람을골라요.생기복덕이되는사람을골라야하
는데,없으면초사흘에못지내고다음날에지내요.초하룻날부터산신제끝날때까지가
정에서도 비린 음식을 못 먹게 했어요. 동네를 나갔다가 초상집에라도 다녀오면 동네에
들어오질 못하게 했어요. 산신제는 엄하고 깨끗하게, 진짜 정성을 들여 지내면서 내려왔
어요.지금은마을주민이고령화가되고있어서,그런절차가안지켜지고있어요.메짓는
쌀도 깨끗한 물로 담궜다가 방앗간에도 안 가고 집에서 손으로 빻았습니다. 끝날 때까지
절대비린음식이나부정한것,다쳐서피나는것등은금기시했어요.그만큼엄하게내려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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