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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문화유씨 유잠
| 柳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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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인물이며 문화유씨(文化柳氏) 17세(世)로 아산시 탕정면 동산리 입향조이다. 현재 탕정
면 동산리에 살고 있는 후손 30세(世) 유한영(柳漢永, 79세)씨의 13대조이다.
조선 태종 때 검한성사(檢漢城事)를 지낸 유원현(柳元顯)이 그의 고조부이고 세종 때 대사헌과 이조
참판에 올랐던 양도공(良度公) 유영(柳潁, ?~1430)은 증조부이며 인천군사(仁川郡事) 유효련(柳孝
聯)이 조부이다. 아버지는 문의현령을 지낸 유정손(柳正孫)이며 어머니는 죽산박씨(竹山朴氏)로 사정
(司正)을 지낸 박수양(朴遂良)의 딸이다.
족보에 유잠은 훈련원 주부(主簿-종6품)를 지냈고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올랐다는 기록이 있다. 집
안에 전하는 바에 따르면, 유잠은 세조 때 온양행궁에 근무했는데 이때 함께 근무하던 교동인씨(누구
인가 확인되지 않음)가 권유해서 교동인씨(喬桐印氏)와 혼인을 하게 되었다. 교동인씨 입향조 인인경
(印仁敬)의 종형제 인수경(印守敬)은 외아들 인호(印瑚 일명 琥)를 두었는데 인호는 아들 없이 외동딸
만 두었다. 인호의 3종형제인 인근(印瑾-인인경의 장남)의 큰아들 인철수(印鐵壽)가 한 때 계자(系
子)가 되었기 때문에 인호도 동산리 구루미 마을에 들어와 거주한 것으로 보인다.
유잠은 바로 그 인호의 외동딸과 혼인한 뒤 구루미 마을에 들어와 자리 잡았다. 세조(1455~68 재
위) 재위 기간을 고려하면 대략 540년 전의 일이다.
유잠은 진석(晉錫), 승석(承錫) 등 2남1녀를 두었다. 장남 유진석은 3남5녀를 두었고 현령을 지냈으
며 이 마을에 살아 후손이 번성하였고 둘째인 유승석은 군수에 올랐으나 강화도 지역으로 이주하였
다. 유잠의 선대는 경기도 양주에 살았으며 그가 이곳에 들어온 인연으로 마을 동쪽 절골 입구에 종
산을 마련한 뒤 부모의 묘를 모시고 자신도 그곳에 잠들었다. 30여 년 전에 후손들이 그의 증조부 유
영와 조부 유효련의 단(壇)을 묘역에 세워 함께 모시고 있다.
-유잠의 묘비와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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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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