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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1946)씨와중매로만나혼인했다.가훈이란것이뭐있냐며,그냥‘성실하게살라’였다

남,
고한다.18살에돈을벌러서울로올라갔다.초등학교를졸업하고적은땅에서아버지를


도와농사를짓다가는이고장에서살기어려울것같아서,먹고살기위해서였다.




“돈을 많이는 못 벌고, 그냥 먹고 산 거죠. 아예 배운 것 없고 능력 없고 머리 안 좋아서


돈도못벌었어요.”김학범씨는2010년에고향으로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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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렸을 때, 우리 동네 입구의 큰 정주나무에서 ‘노신제’를 지냈어요. 서쪽으로 안
쪽정주나무라해서정주나무가또있었지요.지금보니350년이라고되어있는데더오래
된것은아닌지,언제부터있었는지는모르겠습니다.현재바깥정주나무는중간에죽었어
요. 내가 객지 나가 있는 동안 죽어 다시 심은 거죠. 그리고 안쪽 정주나무는 상했지만,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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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그대로보존하고있어요.그곳에서매년제사를지냈습니다.”
김학범씨는만6살에초등학교에들어갔으며,기억으로는그당시부터계속‘노신제’는
똑같이지냈다고한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가구 수도 많고, 사람도 엄청 많았어요. 그때는 형제가 많은 집은
7~8남매나10남매까지되고요,객지에나가있는사람은불과한두사람정도였어요.차
차시간이흘러가면서,5·16박정희대통령이후객지로많이나갔죠.제가우리동네에서
아마첫번째로객지에나간걸로알고있어요.지금생존해있는사람중에서는.”
윗대, 그 윗대에서부터 내려온 ‘노신제’는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몇백 년을 지내
왔다. 현재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를 심어 놓고 지내왔기 때문이다. 옛날에도 제사상은 일
반 제사 지내는 것과 같았다. 떡과 과일을 차려놓고, 동네 사람들 이름을 부르며 소지를
올렸다.
“일주일 전에 동네 주민들이 모여서 생기복덕을 따져 마을에 본보기가 되는 사람들, 자
손이 잘된 집, 부부가 화목하게 잘 지내는 집을 뽑았어요. 그 사람들이 제사를 지냈지요.
동네서제일적합한사람을뽑아서일주일동안몸을단정히하고,회관에서음식을장만
해 제사를 지냈죠. 일제강점기에도, 6·25 때도 지냈어요. 아무리 없이 살아도 지냈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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