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785페이지

72페이지 본문시작

수술을해서아쉬움이크다.


,
25세때,가까운평택의미공군부대에취업이되어2년을근무하다가성환의미공군부대

?


로 옮겨 2년 3개월을 더 근무했다. 그 후 잠시 금광 채굴작업에 참여한 것을 제외하곤 농사

?

를 지었다. 논밭이 3,200평이 있어서 생활하는데 별 어려움은 없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손을 놓은 지가 꽤 되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성환에 28명이나 되는 동창들이 있어서 즐겁
?


게 어울렸는데, 이제 3명만 남아있어 크게 안타깝기만 하다. 이제 서로 볼 날도 얼마 남지
?
2
않았다며,한달에두번씩정기적으로모이고있다.
먼저 금광에 대한 일반적인 구술이 있었다. 어느 책에는 율금리의 옛 지명이 금곡리라고
나와 있는데, 그의 설명에 의하면 율금리 안의 금곡동으로 현재는 율금리 3구로 불리고 있
다고 한다. 질문자가 “하여간 율금리나 금곡동이나 모두 ‘금(金)’이 들어 있으니, 지명을 붙
70
인 사람은 금광이 개발될 곳인 줄 알았나 봐요.”라는 말을 해서, 전해 내려오는 재미난 이
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본래 일정 때의 행정단위인 직산현에는 직산을 비롯하여 성환, 입
장,성거가포함되어있었다.근처를지나던소나기구름들이금이많이나는청직산은피해
가야 한다며 모두 피해갔다는 것이다. 궁금하던 수수께끼가 풀린 셈이었다. 성환과 입장은
배와거봉포도가유명한특산물이다.다른과일도비슷하지만,특히거봉포도와배는비가
적게 내려야 좋은 상품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때문에 비가 적게 내리는 이 지역이 거봉
포도와 배의 재배에 적지(適地)가 된 것이다. 왜 이 지역은 비가 적게 내리는지 궁금했는데,
그런전설같은이야기를믿는다면궁금증이풀린셈이다.
오늘날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금값이 당시는 어땠는지 짐작이라도 해 달라고 했더니, 고
개를갸웃거리기만한다.쌀값과비교해보자고했더니,당시는먹고살기힘든때여서쌀값
이매우높았다고기억하고있다.한참어려울때는부잣집에서쌀한말을빌리면,1주일이
나 5일씩 일을 해주어야 했고 좀 나아진 후에도 3일 일을 해 주어야 했다고 기억한다. 지
금은 노동자의 하루 일당으로 40㎏ 정도의 쌀을 살 수 있으니, 얼마나 큰 차이인지 모를
일이다.
지금은 야산이 배 과수원으로 변해 있고, 평야 지대에 가까운 지형이어서 금광으로 개발
된 적이 있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다. 질문자는 문단 선배인 정창순 시인의 석일농원을
여러차례방문한적이있다.그농장은율금리의인접마을인송덕리에있어서수없이지나

72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