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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보기
18명
13명
11명
5명
- 최고령자
배다리 마을에서는 남연이 할머니로 91세이고
달보기 마을은 장옥순 할머니가 96세이시다.
- 호당평균소득
배다리 마을은 호당평균소득이 년/3,000만원 정도이며
달보기 마을은 호당평균소득이 년/1,500만원이다.
3)
자연 경관
배다리 또는 선교리라고도 하며 비교적 가옥이 밀집되어 있는 농촌 마을이다. 달보기 마을
에는 산봉산이 있다. 산봉산은 달보기 마을 서쪽에 있는 산으로 공세포에서 드나드는 뱃사
람들이 뱃길을 떠날 때 순풍을 빌어 제사를 지내면 영험이 있다는 신봉사가 있었다.
4)
마을 변천 과정
배다리는 본래 아산군 현내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월견리, 선교리를
병합하여 월견리의 "월 과
"
선교리의 "선 의
"
이름을 따서 월선리라 하여 영인면에 편입되었
5)
입 향
현재 장흥 임씨가 가장많은 53가구중 19가구가 살고 있으며, 장흥임씨 조상인 임욱의 영정
을 모신 사후에 후손들이 매년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그 다음 많이 사는 성씨는 경주 이씨,
온양 정씨이다. 그 이외에도 다른 많은 성씨들이 다양하게 분포되어 살고 있다. 토착성씨로
는 장흥 임씨와 온양정씨가 약 300년의 역사로 오랫동안 살고 있으며 온양정씨의 시조묘와
재실이 있다. 달보기 마을에는 장흥 임씨가 제일 먼저 터를 잡았으며 김해 김씨의 성을 가
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그 다음이 전주 이씨의 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6)
지 명
배다리 : 배다리는 월선리에서 가장큰 마을로서 예전에는 조수가 이곳까지 통하여 배가 드
나드는 선창이었다.
달보기 : 배다리 서쪽에 있는 마을로서 뒷산에 해마다 정월 보름에 망월을 보는 터가 있다.
도숫골 : 달보기 마을의 뒤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신봉산 : 달보기 마을 서쪽에 있는 산. 공세포에 드나드는 뱃사람들이 뱃길을 떠날때 순풍
을 빌어 제사를 지내면 영험이 있다는 신봉사가 있음.
짐 골 : 도숫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신봉사터 : 달보기 서쪽 신봉산에 있던 신봉사터.
새배다리 : 전에는 조수가 배다리까지 통하여 배가 드나들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수중보를
만든 이후로 조수가 끊기고 거머니들에 동네가 생기자 배가 새로 접안할 수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불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굴 산위산 : 산에 바위가 많고 예전에는 바다에서 나는 조그만 굴이 많이 있어 굴 바위산이
라 한다.
매봉산 : 매의 부리처럼 생겨서 매봉이라고 한다.
(이규갑 일가의 묘소와 흥국순의비가 있다.)
비석거리 : 1968년에 성주이씨 이병준자선비를 세운뒤에 외부인들이 비석과 월송정을 보고
부르던 것이 지명으로 와전되어 불리고 있다.
달보기포강 : 일제 강점기 말에 포강을 만들어 농사에 사용하였으나 현재는 영인저수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별 쓸모가 없어졌다.
사우모선사 : 1978년 온양정씨 시조 위패를 모신 월선리 산7-3번지에 건축하였고, 4월과 10
월에 제향을 한다.
영정각(
閣) : 영흥대도호부사(
大都
) 전라좌수사
( 羅
)를 지낸 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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