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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업기획자로서의생활



전역후에는호서대학교군사교육교관으로부임했다.교관으로1년여근무후교무,기


획,총무과장,복지재단일등으로30여년간일하며대학발전에기여했다.당시충남테크

노파크 산학협력 사업의 산파로서 중심 역할도 했다. 그 일로 일본으로 출장을 다니기도



했다.정근모총장님의뜻을받들어사랑의집짓기행사에도참여했다.그때지미카터전


미국대통령도만나며봉사활동의가치를몸소체험했다.
호서대 퇴임 후 본격적으로 문화사업을 시작했다. 2011년에 해솔문화다큐재단을 설립
했는데마침충청남도에서우리전통문화를지원하는사업을할때였다.장로이기도한안
대표는평소주변의소외계층을살피던중인근아파트에집단거주하는사할린동포들의
안타까운사정을접하게된다.그들을위해사업을구상하고2,200만원의예산을신청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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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대개 신청금은 깎이기 마련인데 오히려 300만 원을 증액 지원받았다. 그 예산으로 사
할린동포를초청,구성동자택에서음악회를정기적으로열어우리음악을향유하고전통
음식인 인절미를 떡메로 쳐 만들고 다식도 박아보게 하였다. 그네를 타며 그립던 고국의
정취에눈물을글썽이던그들을보며보람을느끼기도했다.
또한, 사할린을 직접 방문하여 그들의 실상을 파악하고 기구한 운명의 기록인 『디아스
포라 천안』을 발간하여 널리 알렸다. 이 책은 반향을 일으켜 여러 신문 방송의 주목을 받
았으며KBS한국방송의집중취재에도응했었다.
“…고국으로갈배를기다리고또기다렸습니다.이윽고,혹은굶어죽고,혹은얼어죽
고,혹은미쳐죽는사람들이언덕을메우건만,배는오지않아…”
이제 그들 대부분은 동토에서 생을 마감하고 2세들이 뒤늦게나마 정부의 도움으로 한
국에영주귀국했다.안대표는그들을돕는모임‘사사모’를결성하여사업이종료된이후
에도그들과의교류를이어갔다.
남들이할수없는다방면의문화활동을하는그는사할린동포돕기운동외에도충남
학 강사로서 천안시민에게 지역의 가치를 알리고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한 사업을 진행한
다.그일환으로역사인물선양세미나도5회실시했으며『호서선비납시오』라는책도발
간했다.마당극대본인『꽃담』도발간했다.꽃담은아직무대에올리지는못했지만,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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