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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일이없었을뿐더러우애깊게잘살아왔기에고향에대한애정을느끼며노후를보


내고있다.

?


어린 시절에는 방죽이 중요한 놀이터였다, 여름에는 멱을 감고 겨울에는 썰매나 스케이


트를 타며 놀았다. 추운 겨울에도 내복을 구경하기 힘들었고, 광목으로 만든 바지 저고리였
는데, 썰매를 타며 힘껏 달리면 맨살의 등이 다 드러나곤 하였다. 그래도 그 시절이 좋았다.
지금은 이제 나이가 내일모레면 90이니, 허망하게 살아온 세월이 한심하기만 하다며 지나
온날을회상한다.
성환초등학교를 다녔는데, ‘화성관이야기’의 구술자인 심재호와 같은 학년이었다. 공부
는 숙제만 하면 다한 것으로 알았고, 지금은 서너 군데씩 다니는 학원은 구경조차 할 수 없
었다. 당시는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사람이 거의 없던 때여서 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와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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께 농사를 짓는 것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형제라곤 누나 하나뿐이어서 부모의 사랑
을 독차지하다시피 자랐다. 누나는 일찍 결혼하고 17세 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아버지와
둘이살아야하는아픔이있었다.
결혼을늦게하고싶었는데,누나가그의결혼을매우재촉하였다.대홍리에살던누나가
시댁과 친정을 오가며 집안 살림을 돕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누나의 힘든 사정을 이
해할수밖에없었는데,다행히그의인물에대한평판이좋았고성실하다는소문이나서선
이많이들어왔다.당시는자전거도귀한시절이었다.자전거를타고누나와같이선을보러
다니다가 쉽게 성혼이 되었는데, 부인은 성환의 유지였고 부면장을 지낸 홍창기의 진외가
쪽질녀였다.
자녀는 3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이 보수가 좋은 삼성전자에서 부장까지 승진하여 큰 기
쁨을 선사해 주었다. 그러나 간부가 되어서 술자리가 잦다 보니, 술병이 나서 요절하는 큰
아픔도 있었다. 그 어떤 슬픔과도 비유될 수 없는 참척이었다. 대부분 가족 이야기는 자랑
으로 이어지곤 했는데, 울컥해서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에 보는 사람도 아픔이 컸다. 더구
나 같은 회사 차장으로 근무하던 작은 아들은 형의 죽음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고, 한동안
술에 의지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하는 고통마저 겪어야 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과거를 회
상하면 좋은데, 죄송한 마음을 전하며 딸 자랑을 주문했다. 사위가 대우그룹의 상무까지
진급해서잘살고있지만,딸이임신중에입덧이심해서얼마나고생을했던지사위가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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