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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으로서 호가 매곡(梅谷)이요, 고(考, 아버지)의 휘 유헌(有憲)은
군자감 판관(軍資監判官, 군수품을 비축 출납하는 종5품관)으로서 호
가 한헌(寒軒)이니, 부여서씨 목사(牧使) 사심(士諶)의 따님에게 장가
들어 선조(宣祖) 정미(丁未, 1607년) 정월 십일에 공을 낳았다.
공의 용모가 풍석(豊碩)하고 재덕(才德)이 겸비(兼備)하되 과거글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백강(白江) 이경여(李敬輿)의 문하에서 수학
(受學)해서 참으로 알고 힘써 행하여 빛난 이름이 날로 들리매, 사우
(師友)가 나라에 천거(薦擧, 추천)하여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 세자
궁의 모든 일을 관장하는 기관) 세마(洗馬, 정9품관)에 제수(除授)되
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당시 전주(箋注)의 분나(紛拏)한 것과 시비
(是非)의 전도(顚倒)한 것을 선생에게 물어서 많이 바로잡았다. 또 경
사(經史, 유학 경전의 역사)에 밝아서 반유(泮儒, 성균관의 유생)의
모시좌전(毛詩左傳)을 읽는 자가 책을 가지고 와서 질의(質疑)하여,
공을 선생으로 일컬었다. 천성이 또한 지효(至孝, 지극히 효성스러움)
하여 부모를 위하여 쌀을 지고 귤(橘)을 품으며 산에서 나무하고 물
에서 고기 잡는 등 옛사람에 부끄러움이 없게 하였다. 뒤에 정문(旌
門)의 은전(恩典)을 받았고 가선대부(嘉善大夫, 종2품계) 동지중추부
사(同知中樞府事)에 추증(追贈, 죽은 후에 품계를 높이는 것)되었으니
이것이 윤리(倫理)를 강명(講明)하고 가업(家業)을 승습(承襲, 이어받
아 계승함)함으로써 그러한 것이다.
숙종(肅宗) 무오(戊午, 1678년) 시월(十月) 십일(十日)에 돌아가서
대흥군 근동면 기곡리(현재 예산군 대흥면 노동리) 갑좌(甲坐)의 자리
에 안장(安葬)하였다. 부인(夫人)은 첨정(僉正, 종4품관)을 지낸 현풍
(玄風) 곽혼(郭渾)의 따님으로서, 공의 산소에 합부(合?, 합장)하였다.
제2장 고적(古蹟)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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