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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행궁에 행행(行幸)했을 때 시행된 온양정시(庭試) 문과에 급제한 뒤 사헌부 감찰·공조좌랑·연기현
감·병조좌랑·예조정랑·황해도사·사간원정언·사헌부지평·성균관사예·옥천군수 등 중앙과 지방의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어머니 상을 당해 삼년상을 모신 뒤에 다시 관직에 나아가 성균관직강·해남현
감을 역임했다. 사헌부장령(掌令-정4품)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고 몇 년 간 쉬다가 다시
봉사시부정·장악원정을 거쳐 장령에 임명되었으나 50세 되던 이듬해에 병으로 졸했다. 그의 아들 명국
(鳴國)은 1699년(숙종 25)에 진사시에 합격한 뒤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칠십에 벼슬에서 물러났다. 효성
이 지극하고 청렴결백함이 조정에도 알려졌다.
[115] 조이중
趙爾重
< ? ~ ? >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양주(楊洲)로 온양의 학자인 참봉 상우(相禹)의 둘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진주(晉州) 강(姜)씨로 첨지중추부사 죽창 주( )의 딸이다. 부인은 안동 권(權)씨 아산 동천리 입향조 지
(芷)의 아들인 형(泂)의 딸이다. 효자였던 아버지를 본받아 그도 역시 효성으로 이름이 높았다. 1665년(현
종 6) 현종이 온양온천에 왔을 때 좌의정 홍명하(洪命夏)가 효성스러움이 능히 그 아버지를 이었다 하여
형 이후(爾後)와 함께 왕에게 진달(陳達)하여 참봉 벼슬을 받았다. 이후 여러 관직을 거친 뒤에 현감에 이
르렀다.
[116] 조이후
趙爾後
<1610(광해군 2년) ~ 1702(숙종 28년)>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양주(楊洲)이다. 온양 지방의 학자 시암(時菴) 상우(相禹)의 맏아들이고 어
머니는 진주(晉州) 강(姜)씨로 첨지중추부사 죽창 주( )의 딸이다. 부인은 파평 윤(尹)씨 양심당(養心堂)
현(俔)의 딸과 원주 원(元)씨 희일(熙一)의 딸이다. 호는 고향 마을(현재 탕정면 매곡리)의 이름을 써서 매
곡(梅谷)이다. 아버지처럼 그도 또한 효행이 지극해서 1665년(현종 6) 현종의 온양 행차 때 좌의정 홍명하
(洪命夏)가 효행이 뛰어난 어진 선비로 동생 이중(爾重)와 함께 왕에게 천거하여 교관(敎官)에 특별히 제
수되었다. 뒤에 서연관(書筵官)에 임명되었으며 1671년(현종 12)에 평강현감으로서 진휼을 잘 해서 표리
(表裏-옷감)를 상으로 받기도 했다. 이후 사어·돈녕판관·의빈도사 등을 거쳐 장악첨정에 오르고 나이
가 많아 관직에서 물러났다. 1699년(숙종 25)에 나이가 90이 되니 특별히 가자(加資)되어 종2품 동지중
추부사에 제수되었다. 93세 들어 졸하였고 윤혼·현상벽·조태만 등의 주도로 1705년(숙종 31)에 아버지
도 배향된 온양(현재 배방면 중리) 정퇴서원(靜退書院)에 추배되었다. 그의 아들 명주(鳴周)는 1675년(숙
종 1) 식년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여 진사가 된 뒤 참봉을 지냈으나 관직보다는 학문에 뜻을 두어 역시
학행과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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