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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시의 읍내동?풍전동, 대산읍의 영탑리, 대산리, 대죽리, 해미면의 동암리가 나타난다. 당시
총호수가 13,538호였음에 견준다면 100호이상은 매우 컸다. 부석면의 대두리?갈마리?가사리
는 적돌만에 면해있는 지역으로 간척으로 막히기 전만해도 서산지방에서 수산물이 가장 많이 나
던 곳이다. 대산지역은 조선시대에 목마장과 수군 첨사가 주둔했던 곳이며, 해안에서는 어엽과
제염이 성했던 곳이다. 서산의 대부분의 어촌은 반농반어였지만 가로림만에 연해있는 중왕리(왕
산이), 우도, 고파도, 대산읍 대죽리의 녹안이, 적돌만 연안의 봉락리 등은 거의 어업을 전업으로
하는 어촌이었다.
『호산록』
에는,
‘본읍에서는 대산(
), 지곡( 谷), 문지고개(
古介), 마산(
), 화변(
등의 여러곳에서 해산물을 잡는다’
고 하였다. 대산과 지곡은 가로림만, 문지고개와 마산?화변은
천수만 지역이다. 오늘날로치면 대산, 지곡, 부석면 일대의 어촌들이며 갯벌 등이 면해있고 만이
형성되어 천혜의 수산입지를 보여주는 곳들이다. 오늘날 좋은 어장이 과거에도 좋았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호산록에 등장하는 어민들의 처지는 대단히 곤궁스러웠고 관의 착취에 시달리고 있었
다. 어민 개인만이 아니라 어촌 마을공동체 전체가 관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었음이 드
러난다.
가난한 홑옷을 입은 어민들이 어름을 깨고 굴을 채취하고 눈을 쓸고 낙지를 잡는데 맨발로 언
갯뻘에 들어간다고 하였다. 가난한 어민들이 의복조차 제대로 갖추어 입질 못했다는 뜻이다. 짚
신 신고서 펄에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니 엄동설한에 맨발작업의 고통이 보통이 아니었을 것이다.
천번만번 죽을 고생해서 관청에 헌납하면 인정사정없는 관리인은 해산물을 더 배정하며 겨울철
사용할 바가 부족하다 핑계하고 독촉하여 받아들인다. 게다가 별도로 차사(
)를 보내어 크고
작다고 따지며 혹독하게 볶아대니 어민의 고생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하물며 6-7월 바쁜 농번
기에 관리의 침해를 당하고서 원통하여 울부짖는 상황을 누가 알랴. 차사들의 호령소리를 들으면
마을민들이 모여서 뇌물을 공동으로 준비하는데,
‘인정의 해산물을 넉넉히 준비하지 않을 수가 없
다’
하니 인정해산물이란 뇌물을 뜻하는 것이다. 공동납(共 納)과 또다른 의미에서 공동뇌물을
준비해두지 않을 수 없는 어촌의 실정이다.
관청에 직접 들어가는 해산물은 많다하여도 문제될 것이 없으나 인정 뇌물을 받치지 않으면 차
사들이 괴롭혀서 관원들에게 곤장같은 형벌을 내리게 하는 것이다. 관청의 위아래가 철저히 썩었
음을 반증한다. 다만 해산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소금도 가렴주구의 대상이고, 곡식도 마찬
가지다. 동네 가운데에 색장(
: 이장?풍헌)으로 권농하는 자와 전답이라도 가지고 있는 호주
들은 대?소관리의 수족이 아닌자가 없다. 동네에 통고하여
‘아무개날 밤에 병방관리(
官 )
아무개와 이방관리(
官 ) 아무개가 군대 조련하는 일로 갈 것이니 아무날 저녁에 전의 형방
) 아무개 등이 곡식을 사들여 가는 일로 올 것이다’
고 한다. 관리들이 처자들을 거느리고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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