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밉기보다 몹시 서운했다. 그래서 견디다 못해 뒷산마루에 물 한 그릇을 떠놓고 신령에게 빌
기 시작했다. 그런 어느날 빌기를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하얀 수염의 할아버지가 나타나 하
는 말씀이 자기가 시키는 대로 한다면 일년내내 시어머니와 따로 떨어져 살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귀가 솔깃해 진 며느리는 방법을 물었다. 그 방법이란 시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에 하
루에 한 번씩 내가 주는 이 가루를 넣어 주기를 일년을 하면 시어머니는 돌아가실 것이라
했다. 너무도 엄청난 사실에 가슴이 뜨끔했지만 더이상 시어머니의 학대를 받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좋아하는 수정과에 그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가루를 섞어 하
루에 한 번씩 정성으로 드렸다. 처음에는 미웁게만 보던 시어머니는 날이 가면서 며느리의
정성에 감복하여 며느리를 사랑하게 되었고 날로 건강해지기 시작했다. 며느리는 자기의 거
짓 정성으로 인자한 시어머니로 변해가는 것을 보고 잘못을 뉘우치게 되었다. 그래서 시어
머니를 살려야 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할아버지를 찾아가 시어머니를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그러자 슬며시 미소를 띄운 할아버지는 사실은 그 가루가 산삼이었다는 사실을 이야기 했
다. 며느리의 놀라움과 기쁨은 너무도 커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며느
리는 시어머니를 정말로 잘 모시려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즈음에 과거에 합격하여 돌
아온 남편은 고부간의 사이가 좋아진것을 기뻐하고 시어머니는 항상 며느리를 위하는 마음
을 가져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다 한다. 그래서 며느리가 할아버지를 만났던 그 자리에는
(갈산리와 명암리 경계) 바위가 생겼는데 그 바위의 정기로 또 그 며느리의 행실을 본받아
열녀 효부가 많이 났으므로 김호레(
)라 하던 것이 "지므레 라
"
불렀다 한다.
장재울
장재울은 원래 장자물이라 불리우는데, 현재 선문 대학교가 있는 자리로써 옛날 선문 대학
교가 생기기전 지형을 보는 지관들이 이 자리는 큰 장자가 울을 틀것이라 했는데, 그 장자
가 지금 학교를 세운 문선명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이전부터 이곳은 장재
울이라 불리운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안지므레
(내금리)-
안지므레는 왜정때 내금리로 불리웠으며, 왜정때 일본인들이 이곳에 금광이 있을것이라하여
이곳을 파 보았지만, 금은 전혀 나오지 않아 헛수고만 하고 돌아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8)
전통놀이 및 대표적 집단행사
갈미는 산제사와 거리제가 아직까지 내려오고 있는 데 산제사는 음력 정월 열 나흘에 지내
고 있다. 그러나 옛날에는 10월에 지냈다고 하며 산제사를 지낸후 새벽
에 정제사와 거리
제, 또한 농토제를 지내고 아침이 되면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음식을 먹으며 다음해의 계획
을 세웠는데 현재 농토제는 지내지 않고 있다. 한편 정제사는 마을 중간에 위치한 우물에서
지내고 거리제는 마을입구 도로에서 지낸다. 또한 마을에는 성황당이 있었는데 그곳을 효성
그룹에서 터를 닦기 위해 없앴다고 한다. 왜정때는 보름에 주대를 들었는데 주대라는 것은
가래에 걸어 사용하는 짚으로 만든 줄과 농기구 줄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주대를 들인 후
에는 줄다리기 줄을 만들어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나누어 줄다리기를 하였으나 해방후에는
없어졌다. 또한 갈산리 1구와 갈산리 2구(갈미와 여술)는 풍장싸움을 했는데 요령은 서로 풍
악을 울리며 깃대를 흔들며 와서 한판 신나게 풍악을 울린 후 마지막에 깃대끼리 싸움을 해
서 깃대가 쓰러지지 않고 많이 남아 있는 마을이 이기는 놀이이다.
여술마을에는 성황제는 성황나무가 죽어서 지내지 않고 있으며 지금은 산신제와 거리제, 유
황제를 지내고 있었다. 산신제는 음력 정월 열 나흘에 지내며 산신제를 지내려면 생기복덕
을 가려서 닿는 사람을 골라 사흘동안 부정을 안해야 한다. 산신제를 지내기 이해서는 반드
시 산신제에 쓰는 샘부터 깨끗이 청소하였으며 제사는 고사봉이라는 마을의 산에서 지내고
있다고 한다. 옛날에는 소를 잡았으나 현재는 돼지머리와 떡을 놓고 지낸다고 한다. 산신제
를 지내고 내려와서는 거리제를 지내고 이어서 유황제를 지내게 된다고 한다. 거리제는 마
을 앞 사거리에서 지내는데 무 사고를 기원하는 것이며 유황제는 옛날 마을 사람들이 모두
식용으로 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인데 지금은 식수로 사용하지 않지만 제사전에 깨끗이 청소
를 하고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이밖에 한식날이면 꼭 제사를 지내주는 곳이 있다고 한다.
그연유를 보면 옛날 마을에 사는 안씨, 엄씨, 한씨가 아들이 없어서 땅을 마을에 내놓았고
그때부터 마을사람들은 한식날이면 세 사람을 위해서 제사를 지낸 지가 100여년이 되었다고
한다.
9)
특별하게 소개 할 만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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