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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목안
이마당 위에 있는 골짜기 지형이 병목처럼 되었음
소먹은 펀던
병목안 위에 있는 골짜기와 펀던
용추
멱시 아래 냇가에 있는 못 옛날에 용이 올랐다 하는데 산이 높고 골이 깊어 경
치가 매우 아름다우므로 바위에 산고무이 동심화양 여덟자를 새기었는데 일인들이 동
"
"
"
심화양 의 글자를 거꾸로 따서 양화당이라 하여 널리 선전하였음
"
외암 서원터
강당 뒤에 있는 외암 서원터 영조 때 학자 이간과 윤혼이 관선재를 짓고
후진들을 교육하였는데 순조 때 외암서원으로 하고 이간과 윤혼을 배양하였다가 고종
5
(1868)
에 헐리고 현재 강당사가 되었음
강당 관선재
용추 위쪽에 있는 강당 영조 때 학자 외암이 이간과 천서 윤혼이 관선재
를 짓고 후진들을 교육하였음.
강당사
강당에 있는 절 관선재를 보호하기 위하여 이 절을 지었음 강당과 강당사도
붙어 있음.
광덕산
천안군 광덕면에 접한
699m
의 산으로 잘 다듬어진 등산로가 나 있다
등산로
멱시
마리골
만인의 숲
이마당
약수터
정상
멱시
어둔골
장군약수
장군바위
정상
벌뜸마을 지명
벌뜸
강당 북쪽 벌판에 있는 마을
7)
전 설
용추당 전설
지금으로부터
100
여년 전에는 용추당의 깊이가 명주실 타래
3
었다는 말이 전하며 지금으로부터
500
년전 도를 닦던 천년 묵은 뱀이 용이 되어 승천하
는데 마을 임산부가 승천하는 용을 보자 부정이 타서 용이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그리하
여 이곳을 용이 떨어져 죽었다 하여 용추담이라 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절골의 전설
옛날부터 닭만한 금덩이가 나오면 그 마을이 화를 입게 된다는 말이 있었는데 절골에서
닭만한 금덩이가 나와 조화 찬란한 빛과 함께 한해에
9
이라 전해 내려오고 있다.
양화담에 전설
강당리 아래 냇가에 있는 못으로 옛날에 용이 올라갔다 하며 산이 높고 골이 깊어 경치
가 매우 아름다우므로 바위에 산과 무이 동심 화양 여덟자를 새기었는데 일본인들이
"
"
"
동심화양 의 글자를 거꾸로 따서 양화담이라 하였다
"
강당사 절의 유래
송악면 강당리에는 강당사라는 절이 있다 이 절은 원래 서원이였다고 한다 이 서원에서
유생들이 밤낮없이 글읽는 소리가 이 골짜기를 퍼져 흘렀으며 이로 인해 강당골이라는
명칭이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대원군이 정권을 잡았을 당시 서원을 철폐했던 일이 있다
그 때 나라에서 보낸 군졸들이 강당리에 있는 서원을 철폐하려고 내려올 때 서원에 있던
유생들이 광덕사에 있는 부처님을 모셔다 놓고 머리를 깎은 다음 목탁을 두드리며 임시
적이나마 스님의 흉내를 낸 것이다 군졸들은 모두 돌아가고 난 다음에도 서원은 되돌아
오지 않고 그냥 절로 정착하여 현재 강당골에 있는 강당사가 되었다고 한다.
8)
전통놀이 및 대표적 집단행사
강당골 마을에서 정월 삼일 사일에 산신제를 지내는데 삼일 저녁에는 산에 올라가 큰
나무가 있는 곳에서 제를 지내고 사일 아침에는 벼락바위가 있는데 그곳에서 제를 올리
고 있으나 현재는 지내지 않고 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간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계조
직으로 연반계가 있어 마을 초상시 서로 돕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벌뜸 마을에서 전해오는 전통놀이는 없으며 음력
2
4
평안과 안녕을 바라는 마을고사를 지내고 있다.
9)
특별히 소개할만한 인물
이마당 위에 있는 골짜기 지형이 병목처럼 되었음
소먹은 펀던
병목안 위에 있는 골짜기와 펀던
용추
멱시 아래 냇가에 있는 못 옛날에 용이 올랐다 하는데 산이 높고 골이 깊어 경
치가 매우 아름다우므로 바위에 산고무이 동심화양 여덟자를 새기었는데 일인들이 동
"
"
"
심화양 의 글자를 거꾸로 따서 양화당이라 하여 널리 선전하였음
"
외암 서원터
강당 뒤에 있는 외암 서원터 영조 때 학자 이간과 윤혼이 관선재를 짓고
후진들을 교육하였는데 순조 때 외암서원으로 하고 이간과 윤혼을 배양하였다가 고종
5
(1868)
에 헐리고 현재 강당사가 되었음
강당 관선재
용추 위쪽에 있는 강당 영조 때 학자 외암이 이간과 천서 윤혼이 관선재
를 짓고 후진들을 교육하였음.
강당사
강당에 있는 절 관선재를 보호하기 위하여 이 절을 지었음 강당과 강당사도
붙어 있음.
광덕산
천안군 광덕면에 접한
699m
의 산으로 잘 다듬어진 등산로가 나 있다
등산로
멱시
마리골
만인의 숲
이마당
약수터
정상
멱시
어둔골
장군약수
장군바위
정상
벌뜸마을 지명
벌뜸
강당 북쪽 벌판에 있는 마을
7)
전 설
용추당 전설
지금으로부터
100
여년 전에는 용추당의 깊이가 명주실 타래
3
었다는 말이 전하며 지금으로부터
500
년전 도를 닦던 천년 묵은 뱀이 용이 되어 승천하
는데 마을 임산부가 승천하는 용을 보자 부정이 타서 용이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그리하
여 이곳을 용이 떨어져 죽었다 하여 용추담이라 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절골의 전설
옛날부터 닭만한 금덩이가 나오면 그 마을이 화를 입게 된다는 말이 있었는데 절골에서
닭만한 금덩이가 나와 조화 찬란한 빛과 함께 한해에
9
이라 전해 내려오고 있다.
양화담에 전설
강당리 아래 냇가에 있는 못으로 옛날에 용이 올라갔다 하며 산이 높고 골이 깊어 경치
가 매우 아름다우므로 바위에 산과 무이 동심 화양 여덟자를 새기었는데 일본인들이
"
"
"
동심화양 의 글자를 거꾸로 따서 양화담이라 하였다
"
강당사 절의 유래
송악면 강당리에는 강당사라는 절이 있다 이 절은 원래 서원이였다고 한다 이 서원에서
유생들이 밤낮없이 글읽는 소리가 이 골짜기를 퍼져 흘렀으며 이로 인해 강당골이라는
명칭이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대원군이 정권을 잡았을 당시 서원을 철폐했던 일이 있다
그 때 나라에서 보낸 군졸들이 강당리에 있는 서원을 철폐하려고 내려올 때 서원에 있던
유생들이 광덕사에 있는 부처님을 모셔다 놓고 머리를 깎은 다음 목탁을 두드리며 임시
적이나마 스님의 흉내를 낸 것이다 군졸들은 모두 돌아가고 난 다음에도 서원은 되돌아
오지 않고 그냥 절로 정착하여 현재 강당골에 있는 강당사가 되었다고 한다.
8)
전통놀이 및 대표적 집단행사
강당골 마을에서 정월 삼일 사일에 산신제를 지내는데 삼일 저녁에는 산에 올라가 큰
나무가 있는 곳에서 제를 지내고 사일 아침에는 벼락바위가 있는데 그곳에서 제를 올리
고 있으나 현재는 지내지 않고 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간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계조
직으로 연반계가 있어 마을 초상시 서로 돕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벌뜸 마을에서 전해오는 전통놀이는 없으며 음력
2
4
평안과 안녕을 바라는 마을고사를 지내고 있다.
9)
특별히 소개할만한 인물
7페이지 본문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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