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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山의
신계영(辛啓榮)(1577~1669)
조선중기때의문신으로자는영길(英吉),호는선석(仙石),본관은영산
(靈山)이다.서울낙산아래서출생하였으며호조좌랑종원의아들이며어
머니는남양홍씨이다.
1601년(선조34년)사마시에합격하여생원이되었으나벼슬에뜻이없
어27세때인1603년(선조36년)예산군신암면오산리선영아래로낙향
하여학문에전념하였다.몇년뒤부모상을당하였으며광해군의난정에
혐오를느껴과거를보지않다가1619년(광해군11년)알성문과에급제하
신계영의신도비(대술면송석리)
였다.같은해검열을거쳐병조좌랑,예조좌랑등을역임하였다.
1624년(인조2년)통신사정립의종사관이되어일본에건너가도쿠가와의사립(嗣立)을축하
하고이듬해귀국하였다.이때임진왜란때포로가되어잡혀간조선포로146명을데리고돌아왔
다.당시에일본에서겪은감회를읊은기행시가그의시문집인??선석유고(仙石遺稿)??의대부분
을차지하고있다.1634년동부승지가되었고1637년에는병자호란때포로로잡혀간사람들을
대가를지불하고귀환시키는속환사(贖還使)가되어심양에다녀왔는데이때속환인600여인을
데리고왔다.그뒤나주목사,강화유수등을거쳐전주부윤을역임하였다.1639년에는볼모로잡
혀간소현세자(昭顯世子)를맞으러부빈객(副賓客)으로심양에갔었고,다시1652년(효종3년)
에사은사(謝恩使)의부사로청나라에다녀왔다.1655년사직하고고향에돌아와여생을한가하
게자연을벗삼으며보냈다.1655년(현종6년)지중추부사가되어기로소(耆老所)에들어갔고,
1667년에는판중추부사에특제되었다.
시호는정헌(靖憲)이다.저서로는시문집인??선석유고(仙石遺稿)??가있으며가사작품(歌辭作
品)??월선헌십육경가(月仙軒十六景歌)??를남겼다.??월선헌십육경가??가사로1655년(효종6년)
작자가치사(致仕)한후예산에들어와살면서그곳의풍경과유유자적한자기의생활을내용으
로하여읊었다.??선석유고??에실려전하며총246수로되어있다.
??선석유고(仙石遺稿)??가사로작자의문집선석유고에수록되어있으며따로필사본으로?선석
가사?라하여전하는것도있다.??월선헌십육경가(月仙軒十六景歌)??1편,시조작품으로연군가
(戀君歌)3수,탄로가(歎老歌)3수,전원사시가(田園四時歌)10수도합16수의총칭,내용은흔히
볼수있는연군(戀君),탄로(歎老),전원한정(田園閑靜)등으로되어있다.표현도순탄하다는평
을들었다.
그의묘소는대술면송석리(숯골)에있으며신도비는대술에서온양가는길가산하록에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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