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80페이지

69페이지 본문시작

4)
마을 변천과정
돌모루 마을과 옥정이 마을은 아산군 근남면 지역으로
1914
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석
중리 석동리와 온양군 이북면의 소정리 일부를 병합하여 석동과 석정의 이름을 따서 석
정리라 하여 아산군 염티읍에 편입된 후 나뉜
1 , 2
구에 속하게 되었다
5)
입 향
돌모루 마을은 청송 심씨가 마을에 처음 터를 잡고 살았으며 현재 그 자손이
13
대째 살
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마을의 형성년대는 서기
1600
년경 약
400
년 전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옥정이 마을은 이 마을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은 김씨로 지금까지
5
로 볼 때 형성년대는 서기
1800
년 약
200
년경으로 추측이 가능하나 이곳은 교통이 발달
되어 상가가 많기 때문에 이동인구가 많아 토박이가 없어 형성년대를 확실하지는 않는
실정이다.
6)
지 명
돌모루 마을의 지명
돌모루
석정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동쪽과 서쪽에 바위가 많이 있음
석정들
돌모루 앞에 펼쳐 너른 들
아래못
옥정이 북동쪽에 있는 못 송곡리에 있는 장자못의 아래쪽이 됨
가마못
아래못 동쪽에 있던 못으로 경지 정리 할 때 매웠음
옥정이 마을의 지명
소정이
충무교 서쪽 뚝 아래에 있는 마을 전에 소나무가 많이 있음
충무교
석정리에서 온양시로 가는 다리로 곡교천에 놓았는데 이순신장군의 현충사 참
배를 위하여
1964
4
76cm
이다 그러다가
90
년도에
4
으로 확장되면서 교통체증이 조금은 완되었음.
옥정교
옥정이 앞에 있는 다리로 실옥동으로 통하는 다리
옥정이
소정이 동서쪽에 있는 마을로 맑은 물이 흐른다하여 옥정이 마을이라하며 일
명 뽕나무 거리라고도 칭하였음.
7)
전 설
옥정교 다리의 전설
옛날 일제시대에 일본 사람들이 우리 조선인을 시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해마다 여
름방학이 되면 그곳 웅덩이에서 동네 꼬마 아이들이 물에 빠져
1
2 3
명이 목숨을
잃었다 몇 년전에도 그런일이 발생하였는데 죽은 아이의 친구 말에 의하면 꼬마가 물위
에 하얀새가 있다며 그 새를 잡으러 깊은 물에 뛰어 들었다는 것이다 죽은 아이 친구도
그 하얀새가 물위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옛날에 비가 많이 오는 어느날 여인이 자
기 아이와 함께 죽었는데 필시 그 여인이 한이 되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고 전해
진다.
8)
전통놀이 및 대표적 집단행사
돌모루 마을은 예전에 줄다리기를 했는데 남자와 여자로 편을 가르고 남자가 이겼을 경
우에는 쌀농사가 여자가 이겼을 경우에는 보리농사가 잘 된다고 믿으며 농사의 풍년을
기원했다 한다.
옥정이 마을은 정월에 윷놀이를 하고 있지만
, 15
년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남자와 여자로
편을 나누어 줄다리기 시합을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했다 마을계는
1
를 하는데 이때 애경사가 난 집은 현금으로 도와주고 남은 잔금을 결산하는 계이다.
9)
특별하게 소개할 만한 인물
10)
종교단체
돌무지 마을의 종교단체로는 성산감리교회가 있고 신도수는
50
여명에 이르고 옥정이 마
을의 종교단체에는 벧엘감리교회가 있으며 성도수는
67
명이다

69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