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928페이지

687페이지 본문시작

독립운동의상징신장



신장은충남서천군마산면신장리에있었던장이다.신장은다른말로새장이라고불렀

다. 신장은 서천군에서 1929년 기준 거래량이 가장 많았던 장이다. 특히 1919년 3월 29일


새장 3·1운동이 일어났던 시장으로 유명하다. 신장은 많은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3·1



운동을일으키는데적합하여애국지사들이마산신장을선택하였다.신장3·1운동의주
모자는 화양 한영학교 출신 송기면, 송여직, 임학규 등 이었는데 한영학교 교사이셨던 김
인전선생의제자였다.
마산면신장은이미폐쇄되어장의모습이남아있지않다.그러나마산신장이서고있
을 때 신장에 살았던 신장리 이장 허종석 씨를 통하여 옛 신장 이야기를 들었다. 허종석
(73세) 씨는 시초면 용곡리에서 태어났지만 1951년 2살 때 신장리 263번지로 이사를 왔
687
다. 신장에서 아버지, 어머니, 누나, 허종석 네 식구가 살았는데 1953년 4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머니와함께한장사
홀어머니는생계를위하여신장을비롯하여한산,판교,서천등안다닌장이없었다.또
홍산장, 임천장까지 다녔다. 어머니가 장을 보실 때 허종석은 어머니를 도와드렸다. 어머
니는 97세로 2022년에 돌아가셨다. 어머니 이부월 씨는 마산 신장에서 생선과 젓갈을 판
매하였는데 젓갈은 어머니가 직접 강경에 가시거나 한산장에서 젓갈을 취급하는 분으로
부터젓갈을받았다.어머니는45년전1980년대에장에다니는것을그만두었다.신장은
1970년대 초까지 열었는데 당시 문산장이 생기면서 신장은 3·8일에 섰는데 한산장과 같
은 날 1·6일장을 보게 하였다. 그러자 마산 사람들도 한산장을 보기 위해 이동하자 마산
장을보도록막은적도있다.이때신장은한산장보다규모가적었다.
어머니가취급한젓갈은새우젓,깡치젓(조기새끼젓갈),밴대기젓갈,꼴뚝이젓갈등이
다. 옛날에는 옹기독에 담아서 구루마에 싣고 판매하였다. 한산장은 버스를 이용하여 이
동하였지만홍산장은마을저수지에서물고기를잡는사람과함께걸어다녔다.
어머니의상도는거의말씀이없는분이지만남을속이려고는하지않았다.어머니를따
라지게를지고홍산장,판교장을다닌기억이있다.판교장,홍산장을본뒤다시남은젓

687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