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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 좋은 가마니만 검사를 해주었다. 가마니는 열다섯 장씩을 묶어서 이고 다녔다. 이것

남,
을 이면 어깨 죽지가 빠질 정도로 엄청 무거웠다. 가마니는 짚을 사다가 추려서 메갱이로


빵구고새끼를꼬아서재료를준비한다음짰다.하루종일짜면7~8장짰다.가마니를수


매했던 시절은 1971년에서 1975년 정도였다. 그 후 가마니를 수매하지 않아서 수입이 없


으니까우렁을잡으러다닌적도있다.그후송순복은“먹고살수없어길산영단(길산정


부양곡도정길산공장)을들어갔다.영단에서가마니를털고,미싱질도하고,겨도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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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푸대에쌀을40㎏,20㎏씩담았다.영단이있어좋은점은쌀겨를땔감으로이용하는것
이다.” 당시 집집마다 왕겨를 풀무질하여 땠다. 풀무질하다 불이 확 나와서 머리 다 꼬실
려먹었던기억이길산사람들은다있다.그때얼굴을데거나눈썹을태워먹은사람도있
었다.왕겨는돈을내고리어카에싣고왔고,후에나무가흔하니공짜로얻어왔다.영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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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일할 때 점심을 안주고 일당은 300원, 400원 했다. 영단에서 일할 때는 손가락이 안보
일때까지일하고퇴근을했다.
물산이모이는길산의상징방앗간
길산에는방앗간이세개있었다.조창인,김성규,이씨네가방앗간을운영하였다.이씨
네방앗간자리는일본인횡산(橫山)이가운영하였다.
이영애씨는두왕리에살면서길산에와서경운기센터를하였다.고장난경운기나이양
기를수리하였다.1970년대는‘딸딸이’라하여경운기를많이이용하자그만큼수리도많
이했다.그래서경운기수리센터에서돈을많이벌었다.
길산에는 유명한 질메다리 이야기가 있다. 금강의 지류 중 가장 큰 하천은 길산천이다.
길산천을따라고깃배가들어온곳이길산포이다.길산포에는질메다리가있었다.1530년
대에도홍예형다리가있었다.길산질메다리밑에거지들이많이살아예닐곱살먹은아이
들이말을듣지않으면어머니들이“너질메다리밑에서주워왔다”고놀렸다.그다리가길
산장 근처에 있었다. 길산천을 따라 많은 배들이 오고 갔는데 1930년대 일본사람들에 의
하여 장항항이 개발되기 직전까지 서천에서 가장 큰 포구 역시 길산포이고 길산장이었다.
1930년대서천의경제적인중심지가길산장에서장항으로옮겨갔다.
길산장날이면고깃배들이길산포에들어왔다.길산포에들어온배는짐을실어날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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