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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산장의옛기억



이렇게길산장은다양한가게들이있었지만1987년이후장이서지않았다.그러니까꾸

준하게조금씩있다가없어졌다.길산장이없어진이유중하나는서천장이매일열렸기때


문이라고 생각한다. 길산장에 온 사람들은 이사리, 두왕리, 서천읍내 사람들이었으며, 갯



것장사는갈목,망월리,장상리사람들이많이왔다.
길산장에서취급한것은생선,태모시,닭등장날은뭐든지다갖고나왔다.또시초,문
산에서는나무를짊어지고와서팔았다.특히길산장은물이귀해서장날에물길어다주고
물 값을 받는 일도 있었다. 물은 두왕리에서 물지게로 지고 왔는데 물 값은 100원 가량했
다.그때물지게를어렵게지고길산장에와서쫄딱미끄러져다엎질러지면다시물을길
러야했다.길이너무질어서물을지고오기가무척어려웠다.이영애씨가길산장으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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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을때는간이상수도가설치되어있었다.
길산장은 모시를 많이 취급했다. 그래서 집집마다 모시 째기를 하지 않는 집이 없었다.
“내(송순복)모시는가늘고좋다고두왕리아줌마가꼭사다짰다.모시짜는두왕리아줌
마는지금도살아계시다는데치매가와서아무것도못하고계시다고들었다.”1970년대
내가 길산으로 시집왔을 때는 모시도 했지만 가마니를 짜느라 바빴다. 가마니 수매를 길
산장에서하기때문에더바빴다.새댁시절에는모시를째고날면어머니가모시를짰다.
딸이여섯이어서한장도막에한필넘게짰다.
모시를사러오는사람들은길산장여관에서잤다.길산장에도모시장이새벽다섯시에
섰다. 새벽에 서는 것은 날이 밝으면 모시가 말라서 거칠게 보이기 때문이다. 새벽에는 모
시가촉촉하기에새벽에거래를한다.새벽에모시를거래할때댄지를비춰봤다.댄지는
일본말이고 손전등을 의미한다. 거간들이 모시를 직접 거래하는데 거간들은 모시를 사면
떠나갔다. 필모시 거래가 끝나고 날이 새면 태모시 장사들이 와서 태모시를 팔았다. 그래
서길산장에서가장많이취급한것은모시였다.
가마니검사
길산장에서는 주변에서 짠 가마니 검사를 했다. 붓가마니는 나가고, 상가마니는 잡박(
雜駁;질서없이이것저것마구뒤섞어있는것을구분하다)을찍어주었다.검사하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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