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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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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산의 높이는 해발 60여 m 정도이지만, 정상에 오르면 금마평야와 함께 주변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옛날에는 홍성읍에서 한양 쪽으로 향하는 길목으로 외부로 드
나드는 출입구 역할을 하기도 했다. 산 정상 부근에는 오래된 토성 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지리적으로홍성외곽을방비하던중요요새였을것으로추정된다.
또한 이곳은 나라에 국상(國喪)이 나면 홍주목 주민들이 산 위에서 북쪽을 바라보면서 곡
을하고눈물을흘리던참배장소이기도하다.가뭄이들면아미산에올라가기우제를지냈
던장소도전해온다.
옛날부터 내기마을과 아미산은 풍수지리적으로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고 전해온다. 아미
산 주변에는 ‘도투셍이’, ‘호연골’, ‘종장’등의 지명이 전해온다. 호연골은 옛날 과거시험을
관장하던어른들이살아서붙여진지명이라고한다.종장이라는지명은과거시험의최종결
정지라고하여붙여진지명이라고구전으로전해온다.
일제 강점기에 장항선 철도를 건설하면 아미산 줄기를 끊어내었다. 아미산 가운데를 끊
어낼 때 피가 나왔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일제가 아미산을 자를 때 독수리와 매가 새카
맣게날아와서하늘을뒤덮고슬피울며산을오르내렸다고한다.
이후 산을 끊어내고 수로를 내면서 물이 항상 고여 있으므로 가재가 많이 살았다. 이런
이유로 가자울이라는 지명도 생겨났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마을에 오래 살아온 노인
들이증언하는내용들이다.
옛날 수리바위가 있던 산봉우리를 수리바위산이라고 불렀다. 수리바위산은 용의 형상이
고, 매봉재 서쪽 맞은편에 있는 백월산은 독수리가 먹이를 낚아채려고 날아오르는 형국이
라고 한다. 용과 독수리가 상호 견제하므로 지역이 안정되어 평안을 누리는 지역이라는 풍
수지리적인 이야기도 전해온다. 수리바위산은 용의 발톱에 해당되기 때문에 우리고장에서
걸출한인물이많이태어난다는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우리지역의 인재 배출을 억제하기 위해 일제가 매봉재와 수리바위산 훼손
작업을할때에,수리가하늘을뒤덮고울부짖었으며수십명의공사인부가부상을당하는
사고가빈번했다고한다.더이상사고를막기위해용의발톱세개중에서한개만을훼손
한 채 공사를 중단했다고 한다. 수리바위산은 이처럼 풍수지리적 영험함으로 지역에 큰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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