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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시기의모습을간직한길산

남,
길산장은서천군서천읍삼산2리길산마을에있었다.길산장은1980년대까지상인들이

오고가다폐쇄된시장이다.길산장은서천의금강지류인길산천이발달한길산포에있던



시장이다. 특히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서천군 지역에서 일찍 개화물품이 들어왔던 장이다.


인천으로부터군산을경유하여길산포까지들어온어선이나상선은석유,광목,구름모등


개화물품을 들여왔다. 특히 메가리간이 발달하였으며 일본인 지주들이 거주하기 전에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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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본주의적싹이돋아나던곳이다.
길산장은지금사라지고건물의잔해만남아있지만서천,기산,문산,시초,마서사람들
이주로이용하던장이다.현재시장이폐쇄되어길산장주변에살고있는송순복씨와이
영애씨로부터이야기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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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동네갈산의모습
서천군마산면이사리에서23세인1971년경길산으로시집온송순복(77세)씨와부여
군 충화면 오동리에서 1971년경 두왕리로 시집온 이영애(75) 씨를 만나 길산장 이야기를
들었다. 송순복 씨가 시집오자 제일 먼저 장화 없이는 못산다고 시누이가 장화를 사주었
다.길산은땅이너무질어서질메라고하였는데시집와서살면서물이세번쪘다.즉길산
에홍수로물이가득찼다는것이다.1987년길산에물이찬이야기는다들잘알고있다.
길산장은 모시전이 유명하였다. 길산장은 예전에 모시전, 옷전, 신발전, 생선전, 가축전,
잡곡전, 나무전, 솜집, 사진관 등과 술집이 즐비하였다. 기억나는 술집 이름은 유저공 외
많은술집이있었다.그래서길산장날은다술먹고,엎어지고,싸움박질이많았다.술은
주로 막걸리를 마셨다. 양조장은 길산교회 옆에 있었다. 석유집, 땜쟁이, 미장원, 농집, 사
진관, 쟁기집, 대장간, 약국은 2개 있었다. 그중 하나는 서울약국으로 길산에서 하다가 서
천으로이사갔다.길산질메다리건너에는김덕수씨아버지가운영했던삼성병원이있었
고 산파도 다리 건너 살았다. 쟁기집 다음에는 대장간이 있었다. 대장간에서는 호미 쇠시
랑을만들었다.또육간이라고하여고깃집도있었다.고깃집은3곳이있었는데이상설씨
가가장오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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