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數千個之?○ 五六坪之厚板 以易腐敗之?桶而新之 換破損之板檻 而修之全?
舊盖之?○去破壞而葺之 於是乎殿閣一新 而侖焉奐然 如躍如飛 ?然聳立乎密
林中 吾鄕之冠儒服儒者 莫不稱頌 且揭載新聞而海內咸稱其善 嗚呼休哉 白君其
可謂 昏衢之一大明炬而善繼述其先大人志事之孝子也歟 僉章甫謂余表讚一言
余亦?在齋末 感其功蹟 忘拙?實 如右云爾
孔夫子 誕降 二千五百九年 戊申 二月十日
金寧 后人 金益權撰 綾城 后人 具忠書書
典校 裵榮旭 儒林?長 金益權 副?長 李康善 楊寅攝 顧問 朴昌奎 李康源 鄭載龍
掌議 孔鍾男 金士順 林永植 李起夏 楊寅基 宋泰永 朴昶來 尹炳直 金元權 具忠書
元容文 崔明善 安鍾泰 金容九 閔性基 宋壽永 方漢洙 鄭在善 李康錫 金容錫
李周熙 金永基
<번역문>
내 일찍이 교궁의 유생들이 초하루 보름에 제사 지내는 것과 봄가을에 석전제를
올리는 것을 보고 이것이 성현을 스승으로 존중하는 예라고 말했다. 비록 밤낮으로
성현의 밝은 법도를 가르쳐 밝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종신토록 감히 성현의 밟아온
법도를 어기거나 넘지는 못했으니 이에 참으로 성현을 스승으로 받드는 자라고
할 수 있다. 경술년(1910) 일본이 침략하여 어지럽힌 이래로 우리 유도(儒道)가 어두
워지고 교궁이 황폐해짐이 너무 심하여서 학문을 닦는 선비로 하여금 송구하고
한스럽지 않을 수 없게 된 지가 오래 되었다. 아아 수원 백씨의 후예 백영기님은
돌아가신 전교 백남기님의 아들로 선한 일을 좋아하는 선비였다. 전교에 추천되어서
부임하여 정미년 봄을 지남에 두루 전각의 모습을 살피고 여러 사람에게 묻지 않고
사적으로 백미 30가마를 내었다. 감역에 위촉되어서 수십개의 재목과 수천개의 기와
와 5~6평의 두터운 널판을 구입하여 썩고 망가진 서까래와 들보를 새로이 하고
망가지고 깨진 난간을 수리하고 낡은 기와를 모두 바꾸어서 망가진 곳을 없애 다
고치니 이에 전각이 한결 새로워져서 빛나게 되었으며 뛰는 듯 나는 듯 울창한
숲속에 솟구쳐 세워졌으니 우리 고을의 관복입은 선비들이 칭송하지 않는 자가
없었고 신문에 이를 실어 온 세상에 다 그 선행을 칭찬했으니 오호 아름답도다.
백군은 그 가히 어두운 세상에 하나의 큰 횃불이고 선대인의 뜻과 일을 잘 이어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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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지역의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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