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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을 중심으로 인근 고을로 퍼져나가며 번창하게 된다. 그 중 셋째인 오달삼은 평산신씨(平山申氏)
사이에 도장(道章), 도상(道常) 등 두 아들, 후부인 파평윤씨(坡平尹氏) 사이에 도빈(道彬) 등 3남4녀
를 낳았다. 오도빈(1647~1706)은 선략장군으로 선전관을 지냈는데 부인 동래정씨(東萊鄭氏)는 효부
로서 정려가 세워져 지금까지 전해진다. 오도빈의 장례 때는 신창현감, 온양군수, 공주목사 등에게
운구에 협조 조치를 요청하여 도움을 받기도 했다.
오도빈의 아들 오수경(吳遂慶)도 효행이 읍지에 기록되었고, 오수경의 장남 오명필(吳命弼)과 차남
오명걸(吳命傑), 4남 오명엽(吳命燁), 오명걸의 아들 오언민(吳彦民) 등이 모두 효자로 기록되었으며
특히 오명걸은 효자정려가 내려졌으나 현재 전해지지는 않는다. 이렇듯 해주오씨 서하공파 가문에
누대에 걸쳐 효행의 가풍이 세워져 대대로 명성이 자자하였다.
-오윤성의 손부 동래정씨 정려-
[71] 단양우씨 우천오
| 禹天吳
<1779년(정조3년)~1849년(헌종15년)>
조선 후기의 인물로 단양우씨(丹陽禹氏) 22세이며 안정공파(安靖公派) 아산시 지역, 송악면 유곡리
느릅실 마을 입향조이다. 현재 느릅실에 거주하고 있는 29세(世) 우보현(禹普鉉, 84세)씨의 7대조이
다. 선대는 충북 괴산에 오랜 동안 거주하였고 10대조 때 예산 대술면 마전리로 와서 3대를 살다가
이때 송악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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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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