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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광천에서도 상인들이 많이 왔다. 지금의 판교보건소 주변에 소시장이 형성되었는데



그때해장국이나국밥을판매하는밥집이즐비하였다.

신동자씨는“우리집뒤가소전이었는데큰소들이많이거래되었다.소를거래하고거


간들은 우리 집에 와서 소대가리를 삶아서 만든 국밥, 또 개로 만든 보신탕을 먹었다. 판



교가보신탕이유명한것은내일이장이라면오늘잡아서냉동시키지않고곧바로탕을만
들기때문에맛이있다.”
소시장은해를거듭하며축소되어갔다.2000년정도에판교리가축시장을개장하기도
하여 신동자 씨도 판교리 가축시장에 음식점을 낸 적이 있다. 하지만 거래되는 소가 적고
이용하는사람들이없어소시장과음식점이폐쇄되었다.
판교장모시전은장미사진관주변에있었다.모시를않는사람이없을정도로판교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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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모시를많이했기때문에모시전역시많은사람들로북적거렸다.태모시가많이거래
되었지만필모시,굿모시도많은양이거래되었다.특히필모시는새벽3시부터거래가되
어모시를사려는사람들로판교장전날밤에는장미사진관주변이북적거렸다.모시장사
들은늘정해진숙소를찾아갔지만많은돈을가지고있어안심하고잠을잘수있는숙소
를택했다.숙소는안전하고안심하게지낼수있어야했다.그들은큰돈을본인이가지고
잠을청하기도했지만가끔은주인에게맡기기도했다.
판교에는 우시장과 모시 때문에 큰돈이 오가자 놀음이 성행하였고 고갯마루에서 강도
사건이일어나기도했다.소팔고모시판돈을노린도둑놈들의소행이었다.또한판교장
에는 텃세가 심했다. 판교 토박이들이 주먹 좀 쓰면 장날 상대방의 어깨를 부딪쳐 시비를
걸어술을뺏어먹는다거나돈을요구하는일들도있었다.
그리운그시절
차주인씨는44년전판교장이야기를하고있지만그때그시절이그립다.많은사람들
이판교장을오고갈때잡화상회운영도제법잘되었기때문이다.지금도가게문을여는
이유는수입이적다는것을알면서도그나마빠지면장도더시원찮고,적지만일정한수입
을얻기때문이다.또손님들이찾아와이얘기저얘기를나누며농사정보를얻기도하고
막걸리한잔을나누는재미가있어가게문을연다.다시말해장삿꾼한사람이빠지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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