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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봉수산과 가야산을 두고 오른쪽에, 예산현의 경우 금오산을
다. 특히 조선시대 읍치에서 수행되던 성황제는 문묘나 사직단에서 지내던 제사와 더불어 지
기대 바로 남쪽에 객사와 동헌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 조선시
방관이 의례의 주체가 됨으로써 제사 영역까지 유교적 이념, 중앙집권적 통치 체제를 실현하
대 군ㆍ현 읍치의 동헌이나 객사터에는 현재 개교 100년이 넘
기 위한 영역으로 관심 가졌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여단은 제사를 받지 못하는 ‘무사귀
는 초등학교가 대부분 자리하고 있는데, 대흥초등학교(1911년
신(無祀鬼神)’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마련된 것인데 보통 여제는 왕의 이름이나 지방관의 주
개교), 예산초등학교(1912년 개교), 덕산초등학교(1912년 개교)
재 하에 이루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여제를 위해 먼저 지역수호신인 성황신께 제사의 시작을
[그림8]복원된대흥동헌(뒤)과임성아문(任城衙門,앞)
도 그 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1911년 일제가 식민지
알리는 성황 발고제를 올렸다는 것인데, 그만큼 성황신은 뭇 귀신께 올리는 여제에 있어서도
교육 방침으로 내세운 1차 조선교육령(1911. 8. 23) 공포에 의
주향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지도서』를 중심으로 조선시대 대흥군ㆍ예산현ㆍ덕산
해 주로 객사터에 공립 보통학교(현 초등학교)가 세워졌기 때문
현의 문묘(향교), 사직단, 성황사, 여단 등에 대한 기록을 정리하면 와 같다.
인데, 1911년 대흥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한 대흥초등학교가 바로
[표4]『여지도서』의대흥군ㆍ예산현ㆍ덕산현제사시설
대흥군 읍치의 동헌 바로 아래 객사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제사시설
문묘(향교)
사직단
성황사(단)
여단
군ㆍ현
다.(그림 9)
[그림9]금오산과예산현읍치에자리잡은
대흥군
군북3리
군서3리
군서3리(봉수산아래)
군서북4리(선학동)
이렇듯 전국의 대부분 객사터에 근대적 교육 시설이 자리 잡
예산초등학교
예산현
현동2리
현서북2리
현북2리
현북2리
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 수행된 전통 공간의 해체 및 식민지 경관
덕산현
현서5리
현서10리
현북7리
현북7리
구성과 관련된 것이었다. 일제는 조선시대 지역의 행정 중심지였
던 읍치의 해체와 관련해 객사나 동헌 심지어 읍치가 기댄 뒷산
(진산, 주산)에 행정 편의나 근대 교육, 종교 등의 명목으로 학교
읍치 공간에서 이들 제사 시설의 입지는 중심에 자리한 동헌ㆍ객사 등의 행정 시설 주변,
나 관청, 교회, 신사, 도로 등을 건설하였던 것이다.
읍치 국면의 경계에 주로 포진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재 각 제사 시설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
이와 같은 행정 시설 외에 읍치의 공간 구성에서 주목해야 할
은 문묘가 모셔져 있는 향교를 제외하고는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향교와 관련된 ‘교촌
것이 다양한 제사 시설들이다. 조선시대 읍치에 꼭 갖추어야 할
(校村)’ㆍ‘교동(校洞)’ㆍ‘향교말’ 등의 지명처럼 사직단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사직골’, ‘사
제사 시설들로 향교에 모셔지는 문묘, 문묘와 좌묘우사(左廟右
동(社洞)’, ‘사직동(社稷洞)’ 등으로 불리거나 성황사와 관련해 ‘성황동(城隍洞)’으로 불렸던
社) 원리에 의해 배치되는 사직단, 그리고 성황사(단)와 여단 등
지명과의 관계에서 그 위치를 추정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대표적이다.
예산 지역의 경우 향교는 모두 확인 가능한데 대흥향교를 비롯한 예산향교, 덕산향교가
주지하다시피 문묘는 문성왕 공자를 받드는 사당이고, 사직
현재 대흥면의 교촌리, 예산읍 향천리의 향교말(향적동), 덕산면 사동리의 교동 마을에 위치
단은 토신(土神)인 사(社)와 곡식신(穀神)인 직(稷)에게 제사 지
하고 있다. 그에 반해 사직단은 전국적으로도 그 흔적을 거의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흔치 않
내던 제단으로 이들은 읍치의 중심이 되는 동헌이나 객사를 기
은데, 예산의 경우 조선시대 대흥의 사직단으로 추정되는 장소와 사각형 형태의 돌무더기가
준으로 보통 좌우에 배치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리고 성황
거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유지돼 있어 그 의미가 사뭇 크다고 할 수 있다. 현재 그
사는 지역 수호신으로 이해되는 성황신을 모시는 사당으로 민속
곳은 대흥면 상중리의 중당 마을 위쪽 ‘사직골’이라 불리는 산등성이인데, 몇 해 전 통신탑
에서의 돌무더기 형태의 서낭당이나 산신당과는 구분되는 것이
건설로 일부 돌 무더기가 무너져 있으나 다행스럽게도 사업 초기 인근으로 건설 부지가 이
2.지리와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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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의뿌리예산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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