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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문화원
문화의 향기를 담아내는 소담옹기
[60] 열녀 허씨 <許氏>
남편따라 소금물 마시고 목숨 끊은 여인
조선시대의 열녀이며 이동우(李東遇)의 부인이다. 아들 하나를 낳고 남편이 일찍 죽으
니 너무나 애통하여 밤낮으로 하늘에 부르짖으며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남편의 장
사지낼 날짜가 정해지자 그는 남모르게 소금물을 마시고 목숨을 끊으니 같은 날에 수한
성(물앙산성) 아래에 장사지냈다.
[61] 열녀 홀개 <忽介>
송곳으로 살 찌르며 정절지킨 여인
조선 후기 영조 때의 열녀이다. 아산현의 관비(관청에 소속된 여자 노비)로 온순하고 얼
굴이 아름다웠다. 고을의 유지인 이인눌(李仁訥)의 아내가 되었다. 남편이 죽은 뒤 홀개
는 열여덟 살 어린 나이에 유복자를 낳았다. 남편이 없으니 관아의 종 하나가 그녀를 넘
보게 되다. 그는 송곳으로 살을 찌르면서 온갖 어려움을 견뎌내며 끝내 복종하지 않았다.
또한 머리를 깎아 스스로 맹세하며 정절을 온전히 하였다. 이 사실이 알려져 1729년(영
조 5)에 그의 열행을 기리는 열녀 정려를 세웠다. 현재는 전해지지 않으며 영인면 아산
리 영인농협 길 건너편에 그의 정문이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62] 효자 홍절 <洪? >
1571(선조 4) ~ 1645(인조 23)
부모 병환동안 옷 띠 풀지 않고 봉양한 효자
조선 후기의 효자이며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명신(名臣) 만전(晩全) 홍가신(洪可臣)
의 아들이며 자(字)는 자고(子高)이다.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부모를 봉양하고 학문에
만 몰두하며 살았다. 효성이 지극하여 늘 예와 정성으로 부모를 섬겼다. 부모의 병환 중
에 7년 동안이나 옷 띠를 풀지 않고 곁에서 성심을 다해 시중을 들었다. 마침내 부모의 상
을 당해서는 예와 슬픔으로 장례를 치르고 삼년상을 모셨다. 1669년(현종 10)에 현종
이 온양온천 행궁에 왔을 때 그의 효행 사실을 듣고 형조좌랑(정6품)을 벼슬을 내려주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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