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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山의
이명준(李命俊)(1572~1630)
조선중기의문신으로자는창기(昌期),호는잠와(潛窩)또는진사재(進思齊),본관은전의
(全義)이다.아버지는병마절도사청강(淸江)이제신(李濟臣)의네째아들이며,어머니는목
천상씨(木川尙氏)로붕남(鵬南)의딸이다.
이정암(李廷?), 이항복(李恒福),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01년 생원시에 합
격하고,1603년정시문과에장원,성균관전적에임명되었으며예조와병조의좌랑을지냈다.
1604년서장관으로명나라에다녀와형조좌랑,병조좌랑,고산도찰방,덕산현감과평양서윤
등을역임하였다.
1613년(광해군 5년) 계축옥사 때 영덕으로 유배되었다. 계축옥사는 대북파가 영창대군 및
반대세력을 누르기 위하여 일으킨 옥사로 칠서지옥(七庶之獄) 이라고도 한다. 이 옥사로 김
제남이사사되고1618년인목대비도폐위되어서궁에유폐되고영의정이덕형과좌의정이
항복을비롯한서인,남인들은유배또는관직을삭탈당하였다.
이때잠와공은이항복이폐모를반대하다죄를얻었다는말을듣고소를올리니극렬한어조
로일관되어있으므로현리가감히받지못하였다한다.
1623년인조반정의성공으로장령에복직되어영남암행어사,충청관찰사호조참판등을역
임하였다.이괄의난때임금이공주로피난하였는데옆에서항상결핍이없게한공으로가선
대부로승진하였다.1627년(인조5년)정묘호란때왕은강화도로피신하고세자를호종하여
전주로피난하였다.그공으로호피와말을특별히하사받았다.이어강릉부사,형조참판등을
역임하였고1630년시폐를논하는상소를올려대사간이되었다가병조참판을거쳐병으로
사직하였다.강릉부사시절에는시폐를혁파하여주민들로부터칭송을받았다.
양천의운당골로들어가두어칸을짓고살았는데비바람을가리지못하였다.호를잠와(潛
窩)라고하였는데이때부터그집을퇴사재라고하였다.1630년12월22일59세의나이로세
상을떠나니국록을먹은지30년이되었으나제대로입을만한옷한벌이없고처자는항상
주린빛이었다.임금께서?이명준은나라일에온정성을바치었고임금의잘못을바로잡는데
뜻을두었더니불행히세상을떠나니내가심히애석하게생각한다.그초상비용이나장사의
용역을모두국가에서지급하여충성을밝혀주라?고하였다한다.
1631년2월16일예장하였으며묘소는덕산면신평리에있다.1644년좌찬성에추증되었으
며저서에는??잠와유고??등4권이있다.인조(仁朝)때청백리에녹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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